文대통령 신년사 ‘남북관계’ 언급 확 줄어…어려움 반영

  • 뉴시스
  • 입력 2021년 1월 11일 15시 35분


남북 관계 언급 분량,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
'전쟁 불용' 등 한반도 문제 해결 3원칙 당위성 재확인
"유엔 동시가입 30년…국제사회에 평화 함께 증명해야"
北, 文정부 협력 구상 비난…"방역협력, 비본질적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신축년(辛丑年) 공식 신년사 속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된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주소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일관되게 밝혀온 문 대통령의 남북간 협력 의지를 두고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일축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 출범과 새 대외정책 전략노선을 마련 중인 북한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이 메시지로 밝힐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당초부터 제한적이었다는 현실론적인 평가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11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발표한 신축년 공식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약 850자 가량을 할애한 분량을 통해 남북간 교류협력의 당위성, 남북미 대화 의지 등 원칙적인 입장만을 재확인 한 수준이었다.

문 대통령은 “올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국제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남북은 손잡고 함께 증명해야 한다”며 “전쟁과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야말로 민족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멈춰있는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지난 4년간 문재인정부에서 함께 이룬 한반도 평화 분위기 유지를 위해 남북간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차원의 당위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와는 별개로 ‘상생’과 ‘평화’라는 키워드 아래 남북간 협력 과제들도 함께 언급했다. 남북이 공동으로 겪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연재해에 대한 협력 필요 인식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가 곧 상생이다. 우리는 가축전염병과 신종감염병, 자연재해를 겪으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며 “우리는 많은 문제에서 한 배를 타고 있다. 남·북 국민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희망한다.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한·아세안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을 비롯한 역내 대화에 남북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며 “협력이 갈수록 넓어질 때 우리는 통일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앞세워 최우선 당면 과제인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보건·의료 협력 분야부터 접점을 넓혀가자는 제안이다. 남북 관계 돌파구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꾸준히 발신해 온 메시지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 동력은 대화와 상생 협력”이라며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의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의지는 변함 없다”고 말했다. 2년 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천명한 ‘한반도 문제 해결 3원칙’을 반복 거론하며 남북간 대화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남과 북이 함께 한 모든 합의, 특히 ‘전쟁 불용’, ‘상호 간 안전 보장’, ‘공동 번영’의 3대 원칙을 공동이행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평화·안보·생명공동체’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9년 제7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을 밝히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3원칙으로 ▲전쟁 불용 ▲상호간 안전 보장 ▲공동 번영을 제시했었다. 북한의 호응 여부와는 무관하게 당위성 차원에서 원칙적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체제의 명운을 걸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 내부의 상황을 감안한 방안으로 ‘비대면 대화’도 가능함을 제시했다. 물리적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북 간 비대면 방식의 물밑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비대면 대화를 하자는 제안이 아니고 비대면을 포함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원칙적인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밝힌 신축년 공식 신년사 속 남북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언급 분량이 지난해 신년사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은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공식 출범, 진행 중인 북한의 8차 당대회 등 변수가 많은 점을 감안해 절제된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경자년(庚子年)’ 신년사에서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 대화, 남북 대화에 대한 성찰적 인식을 1800자 분량 안에 풀어냈다. ▲DMZ 국제평화지대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노력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추진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공동 입장 등 다양한 구상을 담았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 속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분량이 줄어든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최근 북한에서 진행 중인 노동당 8차 대회 속 변화된 대외정책 전략노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근본 원인이 남측에 있다며 남북정상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관계 개선이 달려있다고 선언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그동안 추진해 온 문 대통령의 남북협력 구상을 가리켜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 관광과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들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 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 버릴 때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 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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