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본관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임기 5년 차에도 방역·보건 분야 등 남북 협력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정부가 강조해온 방역·인도적 협력과 개별 관광에 대해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규정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기존 구상만 되풀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핵탄두 탑재 핵추진잠수함 등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핵무기들의 개발 사실을 대거 공개한 데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으로 비핵화 문제를 거론했다.
○ 북한 핵 증강 선언에도 ‘대화’ 강조
문 대통령은 “정부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멈춰있는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며 코로나19를 고리로 한 보건 협력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한-아세안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을 비롯한 역내 대화에 남북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며 “코로나 협력은 가축 전염병과 자연재해 등 남북 국민의 안전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들에 대한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협력이 갈수록 넓어질 때 우리는 통일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며 “언제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의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거부에도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기조는 바꿀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남측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 만큼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내부 결속을 위해 강경 메시지를 내놓기는 했지만 대화의 여지도 분명히 남겨 놨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어떻게든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 김정은 핵위협에 “핵무기 없는 한반도가 의무”
다만 문 대통령은 북한이 요구한 한반도 내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 중지에 대해선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 대신 문 대통령은 “전쟁과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야말로 민족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의무”라며 김 위원장의 핵증강 선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한미 연합훈련 중지 요구는 우리로서는 난제”라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한미 대화를 통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이날 27분간 진행된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의 북한 관련 언급은 3분 남짓으로 지난해(6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 답방을 비롯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스포츠 교류 등 구체적인 남북 협력 사업을 제안했지만 올해는 원칙적인 남북 협력을 제안하는 데 그쳤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남북 모두 운신의 폭이 좁고 미국 신임 행정부 출범을 앞둔 만큼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선 최근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 등을 언급하지 않은 채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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