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 실무 대표단이 이란에 억류돼 있는 한국 선박과 선원 문제를 해결 짓지 못한 채 13일 귀국한다.
최 차관과 대표단은 이란에서 고위층을 두루 만나며 억류 해제를 촉구했지만 이란 측이 사법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란 당국이 요구하는 한국 내 은행에 묶여 있는 이란의 원유수출대금 문제 역시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지 못하며 억류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 차관은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최 차관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이란에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이란 측이 지난 4일부터 우리 선원과 선박을 억류하고 있는데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구했다. 앞서 지난 7일 이란에 먼저 도착했던 실무 대표단도 이날 함께 귀국한다.
최 차관은 이란 현지에서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외교차관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자리프 외교장관, 헤마티 중앙은행 총재, 하라지 최고지도자실 외교고문, 졸누리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 헤크마트니어 법무차관,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와 연달아 접촉했다.
하지만 이란 측 인사들은 “한국 선박이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의 환경 오염 문제로 나포됐다”며 사법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문제는 이란 측이 ‘기술적 문제’라고 주장하면서도 열흘 넘게 한국 선박의 해양 오염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환경 오염 증거를 제시할 경우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국제법률국 관계자까지 출장에 동행했지만 이란은 자료 제출을 미루고 있어 객관적 접근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각계 지도층과 면담에서 이란 측의 우리 선원과 선박 억류에 대해 엄중 항의하고 조속한 해제를 요청했다”며 “이란이 주장하는 기술적 사안에 대해 일말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고, 조속히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 달라 요구했다”고 전했다.
특히 최 차관은 이란 방문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에 묶여 있는 이란 원화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이란 측에선 선박 억류와 동결 자금은 별개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국내 중동 전문가들은 실질적으로 두 사안이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부터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로 교역을 진행해 왔다. 이란에서 원유 등을 수입한 한국 정유·화학회사가 두 은행에 대금을 입금하면 이란에 수출하는 한국기업이 수출대금을 찾는 상계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 2019년 9월 미국 정부가 이란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국내 원화계좌도 동결됐다. 이후 지난해 5월 정부는 미국, 이란과 협의를 거쳐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인도적 품목 일부를 이란에 수출하는 절차를 재개했지만 이란 측에서는 현재 70억 달러(약 7조7600억원) 규모의 자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실제 최 차관과 만난 이란 측 인사들은 한국이 미국의 제재를 이유로 원화자금을 부당하게 동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는 “원유 수입과 관련해 이란에 빚진 70억 달러를 즉시 동결 해제하지 않으면 이란과 한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동결된 자금에 대한 이자까지 요구했다.
최 차관은 한국과 미국 금융시스템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원화자금 활용 극대화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란 측에 현실을 직시하면서 원화자금의 원활한 활용 방안 모색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일단 최 차관과 협상단이 한국에 돌아왔지만 외교부는 지속적으로 선박 억류 사태와 동결 자금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현재 한국인 5명 등 20명의 선원이 승선해 있는 한국 국적의 화학제품 운반선 ‘한국케미’호는 이란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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