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선박나포, 한미관계 이슈로
이란 “자금 해제 美허가 받아오라”… 핵협상 타결뒤 이란 제재완화 가능
최종건 외교차관, 큰 성과없이 귀국… 단독 대응 한계 판단해 美 협의 결정
美 호응할지 불투명… 장기화 우려
정부가 이란의 우리 선박 나포 사건을 미국의 이란 제재로 국내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은 물론이고 미-이란 간 핵합의(JCPOA)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보고 미국과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사태가 한-이란 양국 현안을 넘어 한미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제정치적 이슈로 비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란의 요구에 따라 70억 달러(약 7조5600억 원)에 달하는 동결자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예외로 인정하거나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선박 나포 문제가 이란 핵합의 문제와 얽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5일 동아일보에 “선박 나포 사건은 동결대금, 동결대금 문제와 연결된 미국의 이란 제재, 이 제재를 풀기 위한 미-이란 간 핵합의까지 한 묶음으로 얽힌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이 이란 제재 해제의 열쇠인 만큼 이 사안이 한미 관계의 주요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미국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앞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정부 대표단은 10∼12일 이란을 방문해 이란 외교부 장차관과 법무차관, 최고지도자실 외교고문 등 다양한 고위 인사들을 만나 나포 선원 석방과 동결대금 문제 해결을 협의했다. 하지만 이란 측이 선박 나포는 법적 사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동결대금을 완전히 해제하라고 강하게 요구해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14일 귀국했다. 동결대금 문제는 이란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퇴출한 미국의 이란 제재가 완화돼야 해결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번 사태를 한국 혼자 풀 수 없다고 판단하고 미국과 협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14일(현지 시간) 이란 정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무드 헤크마트니아 이란 법무차관은 최 차관에게 “이란 자산 동결은 상호 관계 증진의 걸림돌이다. 양국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포된 선박의 사법 처리를 담당하는 법무차관이 “동결자금 해결이 우선”이라고 주장한 것. 특히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은 13일 “(최 차관 등) 한국 대표단은 돌아가 이란의 동결자금을 해제하는 (미국의) 허가를 받아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 핵개발을 문제 삼아 이란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원화 결제계좌를 만들어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을 예치하고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수출하는 물품 대금을 이 계좌에 있는 돈으로 지불했다. 2015년 이란의 핵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하는 이란 핵합의에 미국과 이란이 서명하면서 제재가 완전히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협정에서 탈퇴한 이후 제재를 강화하면서 계좌가 완전히 동결된 상태다.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복귀를 시사한 만큼 이란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예외를 허용하거나 제재 일부를 완화할 것을 미국에 설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논의가 미-이란 간 협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다만 국내 문제가 산적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초기 이란 제재 완화에 호응하고 나설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은 “환경오염 때문에 선박을 나포했다”면서도 관련 증거를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란 정부가 환경오염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이란 정부는 “억류 선원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리 정부에 강조하면서 “양국관계 증진을 희망한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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