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문정인 “文정부 외교 실패 아냐…북미 촉진자 역할 가능할 것”

  • 뉴시스
  • 입력 2021년 1월 17일 12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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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하노이' 오판에 우리 고통…코로나 사태까지"
"판문점·평양 선언, 남북 군사합의서 유효…희망 있다"
"北 과소평가해선 안 돼…싱가포르 합의서 시작해야"
"北, 강한 협상 의지 드러내…美 고위급 특사 파견해야"
"美 혼자서 북핵 못 풀어…6자 안보정상회담이 대안"
"日, 청와대 만능 '박정희 시대'로 착각…현실 인정해야"

지난 3년 8개월간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로 외교안보 정책을 자문했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지난 14일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2017년 위기 상황에서 2018년 희망의 한 해를 만들었다. 2019년 하노이회담이 좌절되면서 교착 상태가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가 역부족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트럼프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며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문 특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 남북 군사합의서는 유효하고,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같은 군사적 위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3년 전 봄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역점을 두는 것이 조속한 북미 대화의 재개”라며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촉진자 역할이 가능하고 충실히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햇볕 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을 수립하는데 깊숙이 관여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다. 지난 2000년, 2007년, 2018년 모든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한 유일한 학자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외교안보 자문그룹의 좌장 역할을 했다.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은 비상근 통일외교안보특보직을 신설하고, 문 특보를 임명하며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의 실마리가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특보는 특보 역할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달 15일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다음은 문정인 특보와 일문일답.

-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진행된 북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북한의 첫 대미, 대남 메시지가 주목을 받았다.

“두 개 다 조건부 메시지다. ‘강대강 선대선’은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북한도 강하게 대립한다는 것이고, 미국이 선하게 나오면 선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남측이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을 이행하면 얼마든지 3년 전 봄날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대미, 대남 메시지는 결국 외교적 협상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홀로서기로 계속 가겠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본다.”

- 북한이 당 대회에서 비핵화 언급 없이 핵무력 증강을 포함해 국방력 강화를 천명했다. 북한의 속내는 무엇인가.

“북한 입장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을 선제적으로 폐기했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 시설과 발사대 폐기 용의를 밝혔다. 이후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도 완전히 영구적으로 폐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거부당했다. 그렇다면 전술핵 활성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고체연료를 사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확도 향상, 군사정찰위성, 핵잠수함 설계 등 미래 전략 자산을 갖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이 북한이 꺼내든 카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 외교 협상에 빨리 나올 것이고 과소평가하면 무시하며 시간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ICBM이나 6차 핵실험 등 설마 했는데 해냈다. 북한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오는 20일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어떤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하냐.

“바이든 캠프 내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세 가지 시각이 있다. 첫 번째, ‘선(先) 폐기 후(後) 보상’이라는 강경파, 두 번째 단계적·점진적 동시 교환 원칙에 의해서 본격적인 군비통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협상파, 세 번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등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북핵의 안정적 관리에 관심이 있다. 북핵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어려우니 한편에선 억제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시각이다.

바이든이 어떤 정책을 결정할지는 북한하기 나름이다. 북한이 인내심과 자제심을 갖고, 향후 5~6개월 동안 자극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국 측에서 협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고, 만약에 미국과 동맹에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강경론으로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한다. 아마 안정적 관리로 갈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그럴 경우,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가 되살아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되면 군사적 행동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은 것이다. 안정적 관리를 선호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주류 세력은 동맹을 상당히 중요시할 것이므로 문재인 정부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 북미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2018년 3월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다. 우리가 먼저 북한과 접촉, 북한 의도를 파악하고,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해 북미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북한이 코로나 때문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하게 조율하고, 접점을 찾은 후 북측과 접촉하는 방법 이외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아주 중요하다. 일부 인사는 북한과 먼저 이야기하라고 한다. 하고 싶지만 북한이 나와야 할 것 아닌가. 현 시점에서는 미국과의 조율 작업이 선행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역점을 두는 것이 조속한 북미 대화의 재개다.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촉진자 역할이 가능하고 충실히 할 것으로 본다. ”

- 당장 오는 3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여부가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로서는 고민이 있다. 임기 내에 전시작전 통제권을 전환한다고 약속했으니 지키고 싶어 할 텐데 그러려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1단계 기본운용능력(IOC),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FMC)을 단계별로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 1단계만 충족됐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해야 하고,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중단해야 하는 선택의 딜레마가 있다. 코로나 사태가 풀리지 않으면 한미연합훈련을 하기가 상당히 힘들 것이다. 2018년 3월의 경우 한미 훈련이 이행되는 가운데서도 북한이 움직였다. 한미가 조율을 잘해서 북한에 주는 메시지가 긍정적이면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 바이든 행정부 ‘바텀업(bottom)’ 방식의 북미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핵 문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바텀업으로는 아무런 진전을 못 본다. 바텀업과 탑다운을 조율한 절충형 접근이 필요하다. 1999년 페리 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페리프로세스를 시작하고, 북미 관계의 반전을 가져왔던 사례가 있으므로 그걸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 거부 못 할 고위급 인사를 특사로 임명해 북한과 대화해야 할 것이다. 커트 캠벨이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든, 존 케리 기후특사가 되든 바이든 당선자와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안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절충형 접근이 필요하다.”

-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까.

“바이든 정부는 이른바 ‘ABT(Anything But Trump· 트럼프 빼고 전부 다)’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비교적 원숙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무모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선언에서 시작해야 한다. 북미 관계 정상화,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노력, 완전한 비핵화 추구 세 가지가 들어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NO’ 할 이유가 없다.”

-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자협상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교훈은 미국과 북한이 양자 협상을 통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안전 보장을 담보해준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을 못 믿으면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이 담보해준다면 가능성이 있다. 6자 안보정상회담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 해줄 것 같았는데 참모나 실무진이 훼방을 놓으면 하나도 이행되지 않는다. 6자 회담 재개는 좋은데 차관보급으로 해서는 북한에서 책임 있는 사람이 못 나올 것이므로 정상이 만나서 하자는 것이다. 미·중 갈등과 미·러 갈등을 해소하고, 북일 정상회담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해도 미국 혼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에너지 보상을 해주기 어렵다. 한·중·일·러 역할 분담을 해줘야 한다. 6자 정상 프레임이 해법이 될 수 있다.중국은 대찬성이고, 일본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고, 미국이 긍정적 태도를 보이면 가능하다. 미국 혼자서 못 푼다. 바이든 당선자는 다자주의와 국제 협력을 강조하니 해볼 만하다.”

- 현실적으로 북한은 미국과 양자 협상을 원한다.

“6자 틀 안에서 북한이 미국과 양자 접촉을 하면 된다. 북한도 이제는 새로운 발상을 해야 한다. 6자 정상회담이라면 김정은 위원장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6자 정상회담이 잘되면 김 위원장이 동아시아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다자 무대에 나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나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도 논의할 수 있다.”

- 블링큰 국무장관 지명자와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이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과 이란의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JCPOA를 준비하듯이 북한과 핵 협상을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JCPOA 할 때는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제네바에서 19일 동안 하루도 떠나지 않고 이란과 협상을 했다. 미국이 북한과 그런 적이 있느냐. 두 번째, JCPOA를 준비하느라 미국 에너지부에서 자그마치 인원 200명 정도 인원을 동원해 15만 페이지 이상의 문건으로 협상을 준비했다. 이란이라는 협상 모델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도 그런 자세로 나서면 북핵 협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도자가 집념을 가지고 정치적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전략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

“정부 입장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협의체에는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2013년 12월 부통령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 연세대에서 강연했을 때,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하라’고 한 적이 있다. 커트 캠벨 신임 백악관 아시아 총괄 담당관도 그런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더욱 신중히 접근할 것으로 본다. 경제적 탈동조화와 기술 동맹에서는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이고, 지정학적으로도 대중 봉쇄 전략을 트럼프처럼 몰아세우진 않을 것이다. 대신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고,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는 강하게 나갈 것이다. 사안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사안별로 대응하면 된다.

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이고, 미국은 동맹이다. 동맹이 전략적 동반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알고, 중국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전략적 동반자를 내치라는 것은 국민 정서에 허용이 안 된다. 미국은 중국에 강한 위협을 느낄 수 있지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한미 간에 대중 위협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양자택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따라 현명하게 대응하면 된다.”

- 일본과는 강제 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로 관계 정상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일이 협력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예컨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도 위안부 문제가 나오고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IMF 외환위기 후 한일 협력이 상당히 필요했고, 일본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왔다. 오부치 전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적극 지지했고, 김 전 대통령도 일본에 대해 문화시장을 개방했다. 이 과정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나왔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역사 문제가 선결돼야 한일 협력을 할 수 있다는 태도다. 지난 12월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만 하더라도 일본 측에서 징용공 문제 선결 없이 참석할 수 없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청와대 만능의 박정희 시대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 때는 청와대가 사법부, 입법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부, 입법부의 판단과 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시절부터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해 왔다. 피해자 동의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본도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 다음달 15일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가신다.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3년8개월간 활동했는데 소회는.

“주요 언론마다 문재인 정부 외교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2017년 위기 상황에서 2018년 희망의 한해를 만들었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이 좌절되면서 교착 상태가 됐다. 우리 정부가 역부족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옳은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노이에서 트럼프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 그리고 남북 군사합의서는 유효하다. 그 덕에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같은 군사적 위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3년 전 봄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에서 어려우면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상근직은 아니었지만, 특보로 일했던 것이 영광이었고 보람도 있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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