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오히려 성적이 좋아지고 돈을 더 번 ‘코로나 승자’도 있다. 그런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고통받는 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제안한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구체적인 방향으로 기금 조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아직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여권의 이익공유제 모델이 기금 조성 형태로 귀결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과 재계에선 “기업들에 대한 또 하나의 준조세”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익공유제를 제도화해서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민간 경제계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이익공유) 운동이 전개되고,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권장해 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이 대표가 강조한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등의 원칙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그 사례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조성됐던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한중 FTA 체결로 농수산업과 축산업은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제조업이나 공산품 업계에는 오히려 혜택을 보게 되는 기업도 많았다”며 “(혜택을 본) 기업들과 공공 부문이 함께 기금을 조성해 피해 입은 농어촌 지역을 돕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 운영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당시에도 위헌 논란에 휩싸였던 이슈다. 애초에 정부는 FTA 체결을 앞두고 중국산 농수산물 수입에 대한 농어촌의 반발을 고려해 FTA 수혜를 입게 될 산업계에 이익금 중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 농어업에 지원하는 ‘무역이득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FTA로 얻은 이익을 따로 추산하기 어려운 데다 기업들에 대한 이중 과세”라는 재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가 한발 물러서서 내놓은 방안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었다.
정부는 당시에도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며, 참여 기업에는 출연금의 10%를 법인세에서 공제해주고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 및 동반성장지수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를 줬다. 하지만 재계에선 “무역이득공유제에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결국 똑같은 형태의 준조세”라는 반발이 이어졌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논란 속에 흥행마저 실패하면서 2017년 1월 출범 이래 현재까지 1164억 원(1월 18일 기준)이 모이는 데 그쳤다. 당초 목표로 내세웠던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에 크게 못 미치는 액수다. 특히 민간에서는 대기업이 197억 원을, 중견기업이 20억 원을 각각 출연하면서 공기업이 기금의 약 73%인 853억 원을 부담했다.
실적이 저조하자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주요 기업 경영진을 국감 증인으로 불러 기금 출연 실적을 묻겠다고 했다가 “자발성을 앞세운 사실상의 강요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에도 결국 코로나 양극화에 따른 정부 부담을 애꿎은 기업들에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기업 팔 비틀기라는 비판을 의식해 ‘자발적 참여’를 기본 원칙으로 강조해온 민주당은 이날 대통령의 ‘힘 실어주기’를 반기면서도 기금 조성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이 대표 등 당 지도부는 플랫폼 기업들의 자발적인 수수료 인하 및 대기업들의 협력사와의 인센티브 공유 등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은 사례들을 모범 사례로 제시해 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구상하는 방향과는 사뭇 달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익공유제의 기본 방침으로 ‘자발적 참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나 당이나 결국 같은 취지로 언급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을 사례로 제시한 만큼 당시 도입 과정 등을 면밀히 검토해 참고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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