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수장 ‘북핵 시급’ 공감…美는 ‘한·미·일 협력’에 무게

  • 뉴시스
  • 입력 2021년 1월 27일 18시 21분


"美외교 우선 순위는 중국 문제…韓, 북한 문제 방점"
"美싱크탱크서 北문제 시급한 리뷰 필요 의견 나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미 외교장관이 첫 통화에서 북핵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데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미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미·일 협력에 힘을 실어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전 30분간 전화 통화를 갖고, 한미 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및 글로벌 사안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외교부는 “북핵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시급히 다뤄져야할 문제라는 데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양국 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며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한미동맹의 지평을 더욱 확대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 외교장관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강 장관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평화, 안보,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인 한미 동맹의 지속적 힘과 중요성을 확인하고 미국·한국·일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미국 국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블링컨 장관이 미·한·일의 지속적인 3자 협력의 중요성과 북한 비핵화의 지속적 필요성을 강조하고, 동맹 강화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통화에서도 지속적인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과 달리 블링컨 장관이 외교 정책에서 3국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는 물론 북한 문제 해결에 상당히 힘이 실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 국무부가 인도·태평양에 이어 한·미·일 협력을 언급한 것은 정책의 우선 순위가 중국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반면 우리 정부는 북한 문제가 우선이고,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일정한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접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협력을 언급한 것과 달리 중국의 경제·안보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미중 갈등 지속을 시사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 역시 청문회에서 중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강경한 접근을 택한 것은 옳았다”며 동맹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동맹과 연대를 통한 대중 압박 전선이 확대될 경우 한국 정부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블링컨 장관이 취임 첫 메시지로 3국 협력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처럼 거칠게 압박하지는 않겠지만 동맹국이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이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섬세하게 반중 노선 참여를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기술 패권을 언급해 5G 화웨이 사용 문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우리 정부가 북핵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의 우선 순위를 끌어당기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는 임기 5년차를 맞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정부에서 이뤘던 성과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의 연장선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이루는 대화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새 외교 수장에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한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행을 위한 북미 협상, 한반도 비핵화 등 주요 정책에도 가장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핵능력이 상당히 고도화됐기 때문에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단계에 와 있다고 보고 있어 북핵 문제 해결에 서두를 것으로 본다”며 “대북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의 대화를 제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수립에 얼마나 속도를 낼지에 달려 있다. 미국 내 싱크탱크에서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대북 정책의 우선 순위를 끌어올리고, 서둘러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9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전반적인 북한에 대한 접근법과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미국의 행정부들을 괴롭혀 온 어려운 문제이고 실제로 더 나빠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대북 정책 검토를 위해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압박을 늘리는 게 효과적일지, 또 다른 외교적 방안이 가능할지 여부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동맹과 협력국, 특별히 한국과 일본 등과 긴밀히 협의하고, 모든 방안들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정부는 미국이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싱가포르 선언의 성과를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을 적극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출범 후 ‘트럼프 지우기(ABT·Anything But Trump)’에 적극 나섰지만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메시지만도 아니라는 점에서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블링컨 장관이 기존에 이란 핵합의를 북한에 적용하겠다고 한 것은 강한 제재로 북한을 대화로 이끌고, 미국의 이익에 걸맞는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제재를 통해 비핵화 협상으로 갈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리뷰를 시작한 것 같다”며 시급성을 갖고 대북 정책 수립에 나서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국 내 대북 인식을 보면 북미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강하게 제재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북 강경 주장이 정책화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실무 협상의 프레임이 돌아가게 하는 것도 성과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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