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잡이 두고 참전한 父, 유해로 귀환…70대 아들은 울었다

  • 뉴시스
  • 입력 2021년 1월 29일 09시 29분


코멘트

국방부, 김성근 일병-조창식 하사 유해 확인
춘천-화천 진격전과 노전평 전투 중에 전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지역(춘천시 북산면, 인제군 서화면 일대)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고 김성근 일병은 국군 제6사단(추정)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춘천-화천 진격전(1950년 10월4~8일)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춘천-화천 진격전은 중부지역의 38도선 돌파·진격작전이다. 이 전투는 낙동강 방어전선인 영천에서부터 국군이 춘천-화천을 거쳐 북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김 일병의 허벅지 뼈 등 부분 유해와 수저, 단추 등 유품이 2010년 4월13일 수습됐고 최근 신원이 확인됐다.

김 일병은 1928년 10월27일 부산 초장동 일대에서 1남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김 일병은 배우자를 만나 혼인한 후 1949년에 아들을 낳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아내와 갓 돌이 지난 3대 독자 아들을 남겨 둔 채 국가를 위해 참전했다. 아내는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고인의 아들 김홍식(72)씨는 71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게 됐다. 김 씨는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고 듣긴 했지만 서러움이 한 번에 밀려오기도 하고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며 “이제라도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안장해서 편히 모실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고 조창식 하사의 유해도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조 하사는 국군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강원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1951년 8월9일~9월18일)에서 전사했다.

노전평 전투는 휴전 회담 중에 발생했다.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지만 유엔군사령부와 공산군(북한·중국군)은 회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전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지역은 강원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하기 위한 요충지였다.

전장에서 싸우다 숨진 조 하사는 66년이 흐른 2017년 6월27일 발견됐다. 머리뼈와 팔뼈 등 유해와 전투화 등 유품이 수습됐다.

조 하사는 1928년 12월2일 충북 괴산군 문광면 일대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하는 맏형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다. 청년 시절 고인은 체격이 건장하고 성격이 호탕해 동네를 주름잡았다.

조 하사는 23살이 되던 해 국가를 위해 참전했고 6개월 만에 전사했다.

고인의 조카 조철주(73)씨는 “셋째 숙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유해를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후손들에게 숙부를 비롯해 6·25전쟁기간 중 나라를 위해 전사하신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신원확인 결과통보를 위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다음달 개최한 뒤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