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범여권은 “재판에 개입한 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면서 탄핵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녹음파일’ 논란에 휩싸인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맞불 탄핵’ 카드도 검토하면서 2월 임시국회는 ‘법관탄핵 정국’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4일 본회의를 열고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재석 288석 중 찬성 179명, 반대 102명, 기권 3명, 무효 4명으로 가결했다. 의결정족수인 151명(재적의원 과반수)을 훌쩍 넘긴 것.
범여권이 사실상 ‘몰표’를 던졌고 국민의힘 등 보수야권은 반대표로 결집해 표 대결을 벌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에선 자가 격리 중인 송갑석 윤영덕 조오섭 의원과 국무위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 한정애 환경부 장관, 부정선거 혐의로 재판 중인 정정순 의원을 제외한 168명이 표결에 참석했다. 여기에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던 정의당(6석), 열린민주당(3석), 기본소득당(1석) 등 여권 성향 소수당과 무소속 의원 일부가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서는 전체 102명 중 99명과 국민의당 소속 의원 3명, 무소속 윤상현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했고, 야당의 1표가 명패 오류로 무효 처리된 것을 감안하면 정확히 102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오전 임 부장판사와 김 대법원장이 나눈 대화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정치권에선 “논란이 커지면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 녹취록 공개의 여파를 우려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탈 표를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당론이 아닌 ‘자유투표’에 맡긴다고는 했지만 이낙연 대표는 본회의를 앞두고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회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찬성을 독려했고, 탄핵소추안 발의에 이름을 올린 161명을 뛰어넘는 179명의 찬성으로 이어졌다.
본회의장 안팎에서 여야의 신경전과 언쟁이 벌어졌다. 탄핵안 대표발의자이자 판사 출신인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제안 설명에서 “‘판사는 신입니까’ 이 질문은 세월호 가족들이 임 부장판사의 갑작스러운 퇴진 소식을 듣고 국회의원들에게 보내온 손편지에 적혀 있는 문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는 헌법을 위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 의석 앞에 ‘졸속탄핵 사법붕괴’ ‘엉터리탄핵 사법장악’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내걸었다. 의사진행 발언에 나선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민생 문제가 다급한 시점에 생뚱맞게 법관 탄핵이 웬 말이냐. 정히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면 첫 대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앞서 임 부장판사 탄핵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다시 회부해 우선 조사를 진행하자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부결됐다.
탄핵안이 통과된 직후 민주당 홍정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삼권분립에 따라 사법부의 잘못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입법부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안 가결이 공표되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이 의원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격려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해 “사법장악 규탄한다” “김명수를 탄핵하라” 등의 규탄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오늘 우리나라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민낯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권의 명운을 가를 재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입시비리 등 혐의,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김경수 지사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 등이 줄줄이 남아있다”며 “바로 정권을 위한 탄핵”이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김 대법원장이 정권과 짜고 후배 법관 탄핵을 추진했다”는 지적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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