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눈치본 김명수, 취임사선 “사법부 독립 수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5일 11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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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추진한 법관 탄핵의 여건을 만들어줘 ‘권력 눈치 보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3년여 전 취임사에선 ‘사법부 독립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여권의 법관 탄핵 움직임에 동조한 정황을 말한 것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사법부 독립 수호’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가볍게 여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17년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16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갈등이 나날이 첨예해지고 격화되면서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법관마저도 이념의 잣대로 나누어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는 상황 진단을 하면서 사법부 독립 의지를 밝힌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어 “국민들은 법관이 사법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법관 개개인의 내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하여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일 공개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의 대화 녹취록에서 드러난 김 대법원장의 처신은 취임사에 강조한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법관의 독립 침해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판사에 대한 탄핵에 나서지 못할까봐 탄핵 대상으로 거론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사표를 제출한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이제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 중에는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며 법관의 사표 수리 문제를 정치적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 대법원장은 또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라고 말한 것으로 녹취록에 기록돼 있다.

한 전직 법관은 김 대법원장의 ‘법관 탄핵’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서 탄핵을 위해 사표 수리를 하지 말라고 거센 압력이 들어왔어도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하는 대법원장은 이를 막아야 하는 입장인데도 오히려 자청해서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세를 취한 것은 법을 따지기 이전에 있을 수 없는 일”라며 “법관 독립 침해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는 김 대법원장 본인의 취임사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이 담낭 절제 등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을 하려는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것은 김 대법원장 강조한 ‘법관의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언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이 범정부적 과제로 추진되고 있던 당시 법원에서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이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 전임 대법원장 때와 달리 법원 상층부에서 일선 법관에 대한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은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과 달리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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