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권력기관 개편에 이어 이번엔 언론 관련 입법에 나서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이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마저 우려를 표하는 6개 언론법안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 언론, 포털 포함 △명예훼손 온라인 기사에 대한 열람 차단 제도 도입 △악성 댓글 게시판의 운영 중단 요청권 도입 △정정보도 분량을 기존 보도의 2분의 1 수준으로 의무화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대상에 방송을 포함 △현행 90명인 언론중재위원을 120명으로 증원 등이다. 이 가운데 언론학계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3개 법안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보도 마음에 안든다고 손배요구 남발할 우려”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 언론과 포털을 포함시킨 법안이다. 이 내용은 윤영찬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토대다. 윤 의원은 개정안에서 고의성 있는 거짓이나 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을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법원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두고 ‘이중 징벌’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형법에 명예훼손죄가 있는 상황에서 민법인 정보통신망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경우 과잉 입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공인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보도할 경우 손해배상을 요구해 언론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정치인, 권력기관, 기업들이 추가 보도 등을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있는 데다 손해배상에 대한 부담으로 자유롭고 신속한 의혹 제기 보도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때 언론이 피해를 입히기 위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을 고의로 보도했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공인, 일반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이런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건 비판 보도를 하지 못하게 해 공익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자연히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에 선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언론을 길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도 언론에 대한 규제가 많은데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는 언론의 자유를 얘기하다 집권 후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니 과도한 규제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방통심의위-언론중재위의 현행 규제와 중복”
신현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의 경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 개정안’이 해당 법률이다. 신 의원은 발의한 개정안에서 “인터넷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 서비스(포털)의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 언론사와 포털에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추가로 넣었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급속히 뉴스가 전파됨에 따라 신속하고 실효성 있게 피해 구제를 하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현재도 임시 게시 중단 조치와 정정 및 반론 보도 등을 언론사와 포털에 요청할 수 있다.
언론학계는 현행법에 근거해 임시조치는 물론이고 언론중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법원 등을 통한 구제 제도도 이미 마련돼 있는데 중복된 새로운 규제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제도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데도 불필요한 입법에 나섰다”는 것이다.
또 이 법안 역시 차단 청구권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통신 분야 시민단체인 ‘오픈넷’은 9일 성명을 내고 열람 차단권과 관련해 “공인이나 기업들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내용의 보도에 대해 열람 차단 청구를 남발할 수 있다”며 “보도 활동을 심대하게 저해,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부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뉴스 자체를 못 보도록 내리게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의 뜻과 무관한 포털의 기사 차단이 남발될 우려를 제기했다.
악성댓글 게시판 중단 “학생 잘못했다고 교실 아예 없애버리는 격”
양기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악성 댓글 게시판 운영 중단 조치 역시 중복 규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양 의원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에 게시된 댓글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입은 경우”를 명시하며 게시판 운영 중단 등의 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댓글로 특정인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경우 게시판 운영을 중단하게 한 것은 중복된 처벌이라는 지적이다. 현재도 악성 댓글은 피해자의 요청 등에 따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미 댓글에 대한 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를 법으로 만드는 것은 과잉 규제다. 꼭 필요하다면 언론사가 문제가 되는 댓글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면 된다. 잘못한 학생만 벌을 받으면 되는데 교실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댓글만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게시판의 운영까지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설명이다.
한편 정정보도 대상이 된 보도에 대해서도 해당 보도의 2분의 1 분량으로 정정보도하라는 것은 언론의 편집권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 교수는 “2개 면 기획으로 낸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할 경우 한 개 면에 전부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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