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 없어진 北 돈주들, ‘주린이’ 대열에 합세[주성하의 북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9일 14시 00분




《 ‘주성하의 北카페’ 연재를 시작합니다. 동아일보 19년차 주성하 북한 전문기자가 한 주간의 다양한 북한 이슈 중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나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들은 은밀한 정보를 금요일마다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뜻밖에 주식 광풍도 함께 몰고 왔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 역시 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한 3월부터 코스피는 두 배 넘게 상승했고, 뒤늦게 주식에 뛰어든 초보자들을 가리켜 ‘주식’과 ‘어린이’를 합성한 ‘주린이’란 용어도 만들어졌습니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등 신조어들도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생전 주식이라고 사본 적이 없는 기자 역시 주린이 대열에 합세했습니다.

북한 이슈는 최근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김정은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람들이 주식차트 보느라 다른 것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어지간히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이젠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은 코로나와 주식 이슈를 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주식에 빠져 있는 것이 비단 한국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세계 곳곳에서 지금 엄청난 유동성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의 주린이와 비슷한 의미로 미국에선 ‘로빈후드’라 불리는 초보자들이 주식에 매달려 있습니다. 남들 다 버는데 나만 못 버는 것 같이 마음이 급해져서 뛰어드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기자는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무역일꾼들도 주식의 세계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역일꾼 정도면 북한에선 확실하게 ‘돈주’ 중의 ‘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주란 무역이나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북한의 신흥부자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국가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주식만 사놓아도 1년 새 두 배씩 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욕망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어쩌면 돈을 만지는 것이 직업인 무역일꾼들은 그런 욕망의 피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북한 정보원도 경제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을 구해달라고 요구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으니 묘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북한 사람들에겐 주식의 세계는 신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해외에 나온 많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북한 사람들이 외국에 나와서 가장 궁금해 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주식이었습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상장기업 등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이 주식이고, 주식시장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주식이 뭔지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김일성대 경제학부 정도나 주식의 개념에 대해 좀 가르칠 정도입니다. 이러다보니 북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도 해외에 나오면 “주식이란 것이 뭔데요?”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좀 살다보면 자연히 주식을 알게 되긴 합니다.

그들에겐 잘만 투자하면 돈이 10%, 20% 불어나는 세계가 정말 신기할 것입니다.

북한에선 투자할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은행에 저금시키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본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큰돈을 저금하면 불법적으로 번 돈이 아닌지 조사 받기 때문에 돈이 많아도 은행에 넣지 않습니다. 북한 부자들은 주택에 두 겹으로 된 비밀의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돈을 숨겨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북에서 투자 개념으로 장사를 하든가, 고리대금업을 할 수는 있는데 위험 부담이 큽니다. 언제 ‘비사회주의적 행위’라고 신고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돈만 떼이면 다행이고, 심할 경우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북한에서 산 사람들의 눈에 누구나 계좌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의 세계는 정말 신기한 세상입니다. 물론 투자했다가 돈을 잃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돈을 만져본 사람들이 투자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해외에 나온 북한 사람들이 선뜻 주식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북한 여권으로는 계좌 개설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습니다. 이미 무역일꾼들은 그런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차명계좌를 만드는 데는 달인 수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2008년 사이 북한 부자들 속에서 중국 부동산 투자 바람이 분 적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의 명의로 부동산 거래를 했던 것입니다. 북한 신의주가 건너다보이는 단둥(丹東) 압록강변 많은 아파트가 북한 돈주들의 소유라는 것이 외신에까지 소개될 정도였죠.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던 북한 돈주들이 주식 열풍 속에 이제 주식시장에도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해외에 나와 있는 소수 무역일꾼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 북한 무역일꾼들이 외국에서 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를 이유로 국경을 차단하는 바람에 북에서 내올 물건도 별로 없고, 수입해 들여갈 물건도 없습니다. 할 일이 없어 북에 돌아가려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니 발이 묶였습니다.

이렇게 너무 심심한 상태인데, 주식까지 폭등하니 어떻겠습니까. 친한 친구들끼리 누구는 뭘 해서 벌고, 누구는 뭘 해서 벌었다 소문까지 쉬쉬 돌아가면 안 하던 사람들까지 조급해 뛰어들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심리를 잘 알지 않겠습니까.

아마 지난해에 뛰어든 돈주들이라면 작년의 주식 대세 상승기에 잃을 확률보다는 벌었을 확률이 더 컸을 겁니다.

무역일꾼들이 주식을 해도 이걸 북한 당국이 알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차명으로 하는데 북한에서 어떻게 알아내겠습니까. 주식의 신세계를 경험했고, 더구나 돈까지 벌어봤다면 북한 돈주들은 엄격한 검열과 사상투쟁 회의가 기다리고 있고, 돈마저 눈치 보면서 써야 하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싫어지지 않을까요.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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