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9개월 만에 손배소 항소심 변론 준비기일 열려
도청 앞 집단발포 때 장갑차 깔려 숨진 공수부대원
회고록 시위대 장갑차 기재 "기록·증언상 군 장갑차"
5·18민주화운동 역사를 왜곡한 전두환(90)씨 회고록 관련 민사소송 항소심이 1년 9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추후 재판 과정에서는 공수부대원이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것을 회고록에 허위 기재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광주고법 제2-2민사부(주심 김승주 고법판사)는 26일 고법 319호 소법정에서 5·18단체와 고 조비오 신부 조카 조영대 신부가 전두환·전재국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 변론 준비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1심 판단을 전반적으로 존중하면서도, 1심에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 ‘계엄군 장갑차 사망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원고 측은 지난 25일 해당 장갑차 사망 사건을 목격한 이경남 목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목사는 1980년 5월 11공수여단 63대대 9지역대 소속 일병이었다. 공수부대원 최초로 신군부 세력의 만행을 고백했고, ‘5월의 회고-어느 특전 병사의 기록’이라는 수기를 냈다.
이 목사는 ‘같은 부대원이었던 권모 일병이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집단 발포 과정에 수협 앞에서 계엄군의 (후진하던)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1999년 증언·기고한 바 있다.
전두환 씨는 자신의 회고록 ‘혼돈의 시대’에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경 시위대 측 장갑차 1대가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1명(권 일병)은 즉사했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고 적었다.
1심은 5·18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서술한 회고록 표현 대부분을 삭제하라고 판시했으나, ‘(이 목사의 글만으로는) 회고록의 (권 일병 관련)내용이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봤다.
이에 원고(5·18단체) 측은 이 목사를 증인으로 불러 권 일병이 시위대의 장갑차가 아닌 계엄군 자체 사고로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실을 재입증할 계획이다. 회고록 기재 내용이 거짓인 만큼, 삭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날 준비기일에서 원고 측이 신청한 증인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피고(전두환) 측에 요구했다.
또 원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한 피고 측이 주장하는 사안(북한군 개입설·자위권 발동·암매장·헬기 사격 등 18가지)에 대한 원고 측의 입장을 서면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피고 측은 ‘회고록에 적시된 표현 중 허위 사실로 인정돼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1판 1쇄 33개 표현 중 32개 표현, 2판 1쇄 37개 표현 전부)을 삭제하지 않는 한 출판·배포 등을 금지한다. 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의 판단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5·18 당시 밝혀지지 않은 의혹을 사실로 특정해 원고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해석한 것 자체가 부당하다. 명예훼손 의도 또한 없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날 법정에서 피고 측은 “(회고록에) 5·18 당시 군의 가매장을 주장한 것을 원심이 암매장으로 봤다. 암매장 증거가 없는데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암매장 사체처리반 운영 문건이 나오는 등 국가 기관이 조사 중인 사안으로, 회고록에 ‘암매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단정지어 적었기 때문에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다음 재판은 3월 29일 변론 준비기일로 열린다. 증인 채택 여부는 본격적인 변론기일이 잡혔을 때 정해진다.
항소심 재판은 2019년 5월 13일 변론 준비기일 뒤 열리지 않다 1년 9개월만인 이날 재개됐다. 재판부는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 1심 판결을 지켜본 뒤 재판 기일을 지정키로 했었다.
전씨는 5·18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3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신군부 세력은 정권 찬탈과 무력 진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불리한 사실을 왜곡해왔지만, 검찰 조서·국방부 과거사위 기록·보안사 일부 자료에 이경남 목사의 목격담과 일치하는 11공수 61·62·63대대 계엄군들의 진술이 기록돼 있다.
‘화염병 투척 뒤 후퇴하는 장갑차에 휴식하던 병사 2명이 우리(계엄군) 측 장갑차에 깔렸다. 권 일병이 수협 앞에서 숨졌다’는 진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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