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또는 검찰과의 사이에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또는 문민통제를 하기 위한 갈등이 때때로 생길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은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4일 윤 총장이 사직를 공식 표명하면서 문 대통령의 ‘윤석열 발탁’ 인사는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당정청 갈등 사례는 많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정책실장 불화부터 홍남기 부총리와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차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국·추미애 법무부 장관 대립까지.
문 대통령이 갈등의 초기에 직접 나서 중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도 같은 설명을 했다. 정책 실현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논의를 통한 해결이 건강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 대통령의 스타일을 답답해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책을 수행할 경우 책임은 대통령의 몫이다. 이 경우 참모나 부처는 대통령을 믿고 자신있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그것이 리더십이기도 하다.
때문에 명확한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 참모들에게 잘못된 ‘시그널’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검찰과 법무부가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파격 발탁에 이은 검찰총장 임명은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청와대 안팎에선 검찰주의자인 윤석열의 칼이 밖이 아닌 안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문 대통령은 ‘상징’을 택했다.
검찰개혁의 상징 역할이 기대됐던 윤 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나타난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틀어졌다. 조 장관이 후보자였던 시절 윤 총장이 ‘의혹이 심각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다는 데에서부터 문 대통령의 ‘시그널’과는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사는 수사대로’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의혹이 심각하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한 것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읽혔다.
조 장관 일가 수사로 취임 초부터 어긋난 윤 총장은 ‘검찰개혁의 상징’에서 ‘정권 반대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윤 총장은 조국,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과 친문(親文)의 ‘공공의 적’이 되면서 맷집을 키웠다.
윤 총장을 상대하기 위해 칼을 뽑았던 법무부 장관들도 문 대통령의 ‘시그널’과 종종 엇나갔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문재인 청와대의 상징’이었던 조국 장관은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비리 등 12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 장관으로 국론이 분열돼 ‘조국 사태’로 명명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오점으로 남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린 시점이기도 하다.
판사, 5선 국회의원, 당대표를 맡은 추미애 장관 역시 재임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의 안착이라는 의무보다는 ‘윤석열 쫓아내기’에 몰두했다.
추 장관이 야심차게 추진한 윤 총장 징계 결정이 법원에 의해 막히면서 문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사과까지 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 검사징계위를 앞두고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이 중요하다”라고 지시했음에도, 법원이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지적한 것은 뼈아프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대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관점의 차이나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을 염려시키는 갈등은 다시는 없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갈등을 뒤로하고 협력관계를 통해 남은 개혁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그러나 참여정부 민정2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취임 초부터 검찰 고위급 인사를 조율없이 강행하면서 신현수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검찰 통제 기능은 마비됐다.
여기에 박 장관의 국회 발언으로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에 대한 당정청 간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로 인해 여론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대표되는 검찰 수사권 박탈에 집중되면서 윤 총장이 직접 나서는 물꼬를 트기까지 했다.
윤 총장이 법무부에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더이상 박 장관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윤 총장에 대한 견제나 통제가 더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라고 사실상 경고를 했지만 연이틀 언론 인터뷰에 이어 그가 좌천돼 근무했던 대구고검에서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또 한 차례 메시지를 냈다.
그동안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쏘았던 민주당에 대해 윤 총장은 “검찰이 밉고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을 무슨 재주로 대응하겠나”라며 “필요하다면 검찰이 국회에 가서 설명하기도 하지만, 국회와 접촉면을 넓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견제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급기야 이날 윤 총장이 사직을 표명하면서 결과적으로 당정청과 윤석열 체제의 검찰은 파국을 맞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며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법무-검찰 간 갈등에서 협력 관계로 나아갈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윤 총장의 맷집은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데다 신 수석 사의표명으로 문 대통령의 의중마저 흐려졌다. 너무 늦은 ‘시그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안에 대해 ‘현직 검찰총장’이라는 이유로 청와대는 에두른 ‘경고’를 주고 행정부 수반인 정세균 국무총리가 총대를 멨다. 이전처럼 민주당이 나설 경우 윤 총장은 ‘검찰총장’이 아닌 ‘정치인’ 혹은 ‘대선주자’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 총리가 “직을 건다는 말은 무책임한 국민 선동”이라며 “정말 자신의 소신을 밝히려면 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급을 올린 윤 총장이 사직하면서 문 대통령의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시그널 마저 무의미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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