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사퇴하면서 그의 정치 행보에 따라 4·7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까지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게 됐다. 정치권에선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의 마지막 행보의 장소를 보수 정치세력을 상징하는 대구로 택했고, 대선을 약 1년 5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윤 총장이 ‘자연인’이 되기 직전 선보인 행보엔 이미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짙게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2일 대구고검 간담회 직전 기자들과 만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초임 검사로 부임했던 것이고,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벌이다 2년 여간 좌천됐던 곳이라는 이유였다. 윤 총장은 서울 출신이고,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가 고향이라 대구와는 혈연이나 지연 관계가 전혀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의 ‘고향’ 언급을 두고 “보수야권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구 지역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때문에 윤 총장을 싫어하는 여론이 여전히 많은 편”이라며 “윤 총장이 앞으로는 자신을 꼭 믿어달라는 메시지를 발산한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이 사퇴 시점을 3일로 결정한 것을 역시 철저한 정치적 판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 총장의 대권 출마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판검사 퇴임 후 1년 간 선거 출마를 제한하는 이른바 ‘윤석열 출마방지법’을 추진 중이다.
정치권은 윤 총장이 곧바로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보다는 4월 선거 이후 대선 행보를 본격화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핵심은 윤 총장이 어느 진영과 손잡고 어떤 형태로 정치에 뛰어들지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우리 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지만, 안철수 또는 박영선 후보가 당선되면 독자세력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10%가 넘는 뚜렷한 주자가 없는 야권은 일단 대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을 기대하며 윤 총장의 사퇴를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친박(친박근혜), 친이(친이명박)계의 우려도 함께 나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회가 되서 (윤 총장이) 만나자고 하면 한 번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윤 총장에 대해 “이제 제약이 없는 ”으로 헌정수호,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맘껏 힘을 써 달라“며 ”국민의힘은 필요하다면 윤 총장과 힘을 합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박 성향의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전 정권 수사하듯 현 정권 수사하는 모습 끝까지 보여줘야 했다“고 했고, 대선주자인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윤 총장의 사퇴는) 잘못된 결단“이라며 ”정치는 (총장의) 소임을 다한 후 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야권 내 일부 거부감은 있겠지만, 야권 대선주자 1위인 윤 총장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면서 다수의 여권 대선주자 중심으로 흐르는 대선 판세를 뒤집을 동력이 된다“고 봤다. 윤 총장이 야권 주자로 정치를 시작한다면 국민의힘 입당과 제 3지대 창당 중 어떤 선택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민주당은 윤 총장의 조기 사퇴가 보선에 악재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 4차 재난지원금 등 여권에 유리하게 구축한 이슈가 윤 총장 사퇴로 묻힐 수 있다는 것.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의 친분 등을 감안하면 윤 총장이 판세 변화에 따라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는 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