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금고지기의 사위, 류 대사가 보는 북한[박수유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2일 12시 00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로 근무하다 2019년 9월 탈북 해 한국에 정착한 류현우 씨를 9일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인터뷰했다. 3월 1일 삼일절에 평양냉면집에서 만나 설득한 결과였다. 현재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그와 동창인 기자가 류 대사를 처음 만난 것도 ‘북한 외교론’ 수업에서였다. 그는 전직 북한 외교관답게 질문을 많이 했지만 동창생들에게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북에 남기고 온 가족들을 염려하는 듯 인터뷰 요청을 마다했지만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말 문을 열었다. 인터뷰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채널A리포트(3월 11일)와 동아일보 기사(12일자)에 못다 담은 인터뷰 전문을 우아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하노이회담이 결렬 이후 대미외교는 물 건너 간 것인가?

“북한은 대미외교를 복원하기 위해 매우 애쓰고 있다. 지난 2019년 7월에는 외무성에 북미회담을 전담해보는 612호실이라는 부서를 신설했다. 2018년 6월 12일 열린 싱가포르 회담 날짜를 땄는데, 최선희 제1부상이 직접 관장한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회담도 이 부서에서 관리했다. 실장에는 북미국 담당부상인 리태성이, 부실장 겸 북측 회담대표로는 김명길 전 베트남주재 북한대사가 임명됐다. 오랜 시간 북미국에서 일해 온 미국 전문가들이 실무진으로 배치된 것이다. 앞으로 회담이 재개될 경우 612호실이 전담할 것이다.

―최선희의 영향력이 그 정도인가.

“최선희는 북미회담과 대미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전문가다. 이번에 외무상에 임명된 리선권은 정치군인에 불과할 뿐 전문성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다. 백남순 외무상때는 강주석 제1부상, 리수용 외무상 때 김계관 제1부상이 실세였듯, 리용호 외무상이 할 때는 최선희 제1부상이 실세였고 지금도 대미외교라인은 100% 최선희가 관장한다.”

―대북제재로 해외공관들도 많이 어려웠을 것 같다.

“2017년 유엔안보리 결의 2371호로 공관에 운영비도 지급이 안됐다. 2019년부터 해외 공관들에 긴축지시가 내려갔고 페루 대사관은 아예 폐쇄됐다. 코로나가 풀리면 더 감축될 것이다. 1998년 고난의 행군 때도 100개 넘던 공관이 절반 넘게 철수했고 현재는 대사관, 총영사관 등이 56개만 남았다. 대외영역이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외교관들은 1년 가까이 월급을 못 받았고 불법장사를 하다가 걸린 이들은 김정은의 권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소환되기도 했다. 주택 임대비를 줄이려 대사관 건물 안에 여러 가족들이 판자로 칸막이를 치고 생활했다.”

―해외 파견 노동인력들은 어떤가.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에 파견된 노동자들은 모두 철수한 상황이다. 유엔결의 2371호가 시행되면서 해외 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철수가 2019년 말까지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러시아에는 유학생 비자를 받아 연기하는 방법으로 일부 노동인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동과 무기거래는 여전한가.

“중동 최대의 무기시장이었던 시리아에 근무할 당시 무기를 많이 팔아 짭짤한 수입을 거뒀다. 2천만 달러의 무기대금을 이란을 통해 운반하기도 했다. 100달러 짜리를 부피를 줄이기 위해 500유로로 환전해 외교행랑으로 옮겼는데 북한에서도 사람이 건너와 운반했다. 현재도 거래가 있긴 하지만 80명 가까이 되던 군수부문 과학자들이 지금은 20명 정도로 축소됐고 방사포 생산도 줄인 상태다.”

―비핵화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


“한 마디로 제로다. 비핵화할 것 같았으면 왜 수많은 아사자를 내면서까지 핵에 집착했을까. 이번 8차 당대회에서도 핵이라는 단어를 36번 강조했고 핵잠수함, 전술핵무기 등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은 양이라도 핵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자기 억제력을 담보받는다.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 자체를 명확히 해야한다. 이 정권의 최대 과제는 제재 해제와 핵 군축이다.”

―대북 전단은 어떻게 보시나.

“1991년 황해남도 봉천군에서 삐라를 처음 접했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당시 남한과 북방권의 수교를 북한이 굉장히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는데, 한러수교 관련 내용이 적혀있어 매우 놀랐다. 최대우방국이 한국과 수교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삐라 종이 질이 좋아서 태우려 해도 불도 붙지 않았다.”

―김정은은 인권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나.

“생각보다 많이 의식한다. 2014년 12월 처음으로 유엔안보리에 북한인권문제 상정된 이후로 외무성에 인권담당대사가 생겼다. 또 북한인권 실상이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해외 근무자들이 귀국하면 무조건 인권담당과에 배치해 입단속을 시켰다. 국제사회의 ‘네이밍 앤 셰이밍’에 민감해 정상국가 이미지를 갖고 인권을 개선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는 것이다.”

-김여정 위상은 어떤가

“김정은과 김여정이 권력을 나눠 통치한다는건 말이 안 된다. 김여정은 로열패밀리로서 권한을 행사하지만 그 권력이 김정은과 대등할 수는 없다. 북한 사회는 대개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김정은이 김정남이나 김정철은 의식해도 김여정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 역시 당장 끼니 때우는 게 바쁘기 때문에 김여정에 크게 관심이 없다.”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나.

“북한 주민들은 당장 끓여 먹을 쌀 한 톨이 없기 때문에 통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밥을 먹어도 배가 불러도 눈이 와도 제일먼저 생각나는 게 북한주민들이었다. 하지만 통일을 포기하는 건 남북한 모두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차이를 줄여가길 바란다. 나 또한 북한 주민들 인권개선과 통일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박수유 채널A 기자 apor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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