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대북 접촉에 나선 가운데 북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북측이 의도적인 ‘무시’ 전략을 구사했다기보다 미국의 구체적인 대북 정책이 윤곽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림’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5일 정부 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우리 정부는 미국 행정부가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안을 사전에 공유받았다.
앞서 전날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 행정부가)2월 중순부터 뉴욕을 포함한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부에 연락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면서 “현재까지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대북 정책을 한창 검토 중인 바이든 정부가 검토 과정에서 대북 접촉을 시도한 것은 기존 미 행정부의 출범 초기에 발생했던 북측의 도발 행위를 막기 위한 ‘시그널’로 분석된다.
또 이러한 사실을 미측 당국자가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은 미국이 이미 북한을 향해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음을 알리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을 오바마 정부가 고수하던 ‘전략적 인내’로 방치하는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셈이다.
다만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셈법을 인지하고 미 행정부의 1차 접촉 시도에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미측의 대북 정책이 ‘검토’중인 만큼 구체적인 입장을 가지고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다기보다 단순한 접촉 수준을 제안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모습에서 북측은 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을 떠올렸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최초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구체적이거나 실질적인 협상을 통한 성과는 없었다.
이 때문에 북측은 이번 바이든 정부의 제안에 ‘무응답’을 입장을 견지했고 미국의 ‘패’를 보기 전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이 대북 접촉 제안이라는 공을 북한에 던졌지만, 북한이 “구체적인 제안을 가져와라”라며 다시 미국에 공을 던진 격이다.
아울러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확실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가져오길 북측이 미측을 향해 암시한 격이기도 하다.
북한은 현재 ‘자력갱생’으로 경제성과를 쥐어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미 접촉 등으로 대내외적 이슈나 안보적 문제가 북한 내부에서 언급될 경우 북한 주민들이 조기 성과 달성을 이루는데 방해요소가 된다는 북측의 계산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오는 15~18일 취임 후 첫 순방으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다. 이를 기점으로 북한이 일찍이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가 결정될 수도 있다.
만약 미국 고위 관료들의 순방에서 대북 관련된 메시지보다 ‘동맹 복원’이나 ‘중국 겨냥’의 메시지에 방점이 실릴 경우 북측의 ‘무응답’은 장기간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한미 당국이 미 국무·국방장관의 순방 이후 대북관계에 있어 진전된 메시지를 낼 경우 북한은 일찍이 반응에 나설 수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측이 대북 정책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접촉을 제안했기에 구체적인 제안이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북측이 무응답 기조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미국 측이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을 가지고 오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럼에도 언제든지 미국을 만날 의도는 있다고 보인다”면서 “미국이 구체적으로 대북 정책 기조를 정하고 구체적인 안을 정했을 때 대화가 이뤄질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북미간 첨예한 계산 속에서 향후 우리 정부의 역할도 주목된다. 기존에 북미관계 촉진을 견인해 온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 온 만큼 앞으로도 한미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북미·남북관계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전날 “한미는 미국의 대북정책 과정 전반에서 긴밀히 소통·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리뷰) 과정에서 정부도 다양한 의견개진, 협의 기회 등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협의는 통일·외교·안보 등 관련 부서 간에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서 이뤄지고 있어 통일부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전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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