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재확인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임기 말 3년 전 남북관계를 복원해 차기 정부에 넘기겠다는 목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다음 달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보고 올해 7월 도쿄 올림픽,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등을 활용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합의를 공개적으로 되살릴 기회를 찾겠다는 것이다.
반면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16일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는 과정에서 “남조선 당국(한국 정부)이 앞으로 상전(미국)의 지시대로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그처럼 바라는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재확약하려는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9·19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위협했다. 김여정은 대미·대남 총책이다.
3년 전인 2018년의 남북관계를 되살리려는 정부의 구상과 2018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한 북한의 입장이 묘한 대조를 이룬 것. 김여정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하루 전인 이날 미국에도 군사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평양선언 재확인”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을 재확약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 위원장의 방남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판문점회담 △화상회담 △서신 교환 등을 꼽았다. “2018년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을 다시 확인하면 이후 남북관계가 더 진전되지 못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안정된 남북관계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남북 정상이 다시 나서 2018년 합의 이행을 보장해야 남은 임기 1년 안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결국 북-미관계가 중요한 북한은 우리가 바이든 행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히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남북관계 복원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
○ 北은 “임기 말 남조선 당국 고통스러울 것”
하지만 김여정이 담화에서 거친 표현으로 남북관계 전면 단절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은 정부의 임기 말 구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한국 정부)은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이런 상대와 마주 앉아 그 무엇을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금 확증하게 된 결론”이라고 했다. 특히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당중앙(김 위원장)이 이미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했다”며 “이것이 북남관계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경고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연합훈련에 대해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이라며 정부에 “태생적인 바보” “떼떼(말더듬이)” “미친개” 등 막말도 쏟아냈다.
김여정은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정리와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남북 협력 교류 관련 기구 폐지 같은 “중대 조치를 최고 수뇌부에 보고드린 상태”라고도 했다. 특히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며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 군사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 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담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되는 노동신문 2면에 실린 만큼 단순한 경고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담화에는 바이든 행정부에 침묵하던 북한의 첫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김여정은 “앞으로 4년간 발편잠(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도쿄에서 미일 외교·국방장관 2+2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북 전략은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 대해 재검토 중이다. 특히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인권 침해 문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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