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지난 17~18일 방한 과정에서 한미 당국자들이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바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다
우리 외교부와 국방부는 17일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및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료에서 각각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에 진전을 가져오기 위한 양국 간 협력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이란 한미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이번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우린 북한(DPRK·북한의 공식 국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문 약칭) 비핵화를 위해 한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다른 동맹·우방국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썼다.
미 국방부 또한 한미 국방장관 회담 뒤 배포한 자료에서 “두 장관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North Korea)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한다는 약속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란 두 표현 간엔 의미상 차이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는 모습.
외교부 정 장관은 18일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한 비핵화’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남북한이) 그 선언에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했다”며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기하는 건 ‘우리(한국)은 비핵화했기 때문에 북한도 같이 비핵화하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 장관이 이번 회견에서 거론한 남북한 간의 ‘선언’은 1992년 2월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선언엔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로 시작하는 문장과 함께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등 총 6개항의 합의사항이 담겨 있다.
이에 앞서 국방부 관계자도 우리 측이 배포한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 자료에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쓴 데 대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서 장관의 발언에 오스틴 장관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국방부 입장에선 둘 중 어느 표현을 사용하든 상관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번 회담 결과 자료를 배포하기에 앞서 미국 측과 문구·표현 등에 관한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선 “한미 간에 비핵화 대상을 ‘북한’ 또는 ‘한반도’로 지칭하는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었을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일례로 한미 외교·국방장관들의 18일 공동성명의 경우 당초 취재진에 예고했던 시간보다 늦게 배포된 데다 ‘비핵화’(denuclearization)란 단어마저 아예 사라졌다.
대신 성명엔 “장관들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최우선 순위임을 강조했다”는 ‘익숙지 않은’ 표현과 문구가 들어갔다.
이에 대해 당국자는 이번 회담 준비기간이 짧았다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양국이) 중점을 두고 있는 내용만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한미가 중점을 둔 게 서로 달랐을 수 있단 뜻이기도 하다…
‘북한 비핵화냐, 한반도 비핵화냐’가 논쟁거리가 되는 건 바로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개념이 ‘북한 비핵화’ 개념과 차이가 있다는 분석에 기초한다.
즉, 우리 정부는 1991년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 이후 우리 측 지역엔 핵무기가 배치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한반도 비핵화=북한 비핵화”라고 밝히고 있지만, 북한 측의 미군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배치 금지와 미국의 ‘핵우산’ 및 확장억제력 제공까지도 비핵화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해왔단 것이다.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 2019년 1월 국회 답변에서 “북한이 계속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밝힌 사실이 있다.
오스틴 장관이 18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쓴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즉 설명대로 두 표현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사령탑인 블링컨 장관은 시종일관 ‘북한 비핵화’를 얘기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는 17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란 표현은 새로운 게 아니다”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여러 결의에 비춰봤을 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 불법이고 국제평화·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와의 정상회담 당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등 4개항의 합의사항이 담긴 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2일 ‘쿼드’(미·일·인도·호주) 정상회의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 “우린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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