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반기문 미주국장 방미 문서…"조만간 현금 지원"
"美언론, 한국이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 노력에 기여 안해"
미국이 1990년 걸프 전쟁을 앞두고 “한미 관계를 껄끄럽게(Strain)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지원을 압박한 정황이 30년 전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외교부가 29일 일반에 공개한 1990년 생산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이 1990년 12월17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미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인사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
걸프전은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개된 전쟁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철수 시한 이틀 뒤인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작전’ 공격을 시작했고, 먼저 공군력을 동원한 대공습을 단행했다. 반 장관과 미 인사들의 면담은 이를 한 달여 앞두고 이뤄졌다.
미국 국방부 칼 포드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반 국장과 면담하며 한국의 군의료단 파견 추진 현황 설명을 듣고 “사우디 측과 군 의료단 파견을 위한 교섭을 계속 추진하되 영어 구사가 가능한 한국의 군의관, 간호원 및 의료 보조원 등을 주사우디 미군 의료단에 배속시키는 방안을 검토 요망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사우디 측과 교섭을 촉진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가 가장 절실한 이집트 측과 의료단 파견 문제를 협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해 한국이 제공하는 수송 지원에 감사하며, 수송 지원이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포드 차관보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 측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강한 성명을 내주길 바란다”는 입장도 전했다.
그는 “전쟁으로 최초 희생되는 미군 병사가 생길 경우 미국 내 여론은 감정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 우방국이 미국에 대해 어떠한 지원과 협조를 제공했는지 떠들어대기 시작할 것이다”라며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친구들이 취한 행동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처드 솔로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페르시아만 사태는 1991년 1월15일 이후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예측불허이지만 만약 무력을 사용할 경우 6·25 사변시 미국의 도움을 받은 바 있는 한국이 미국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가라는 미국 여론이 제기될 수 있다”며 “상품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문제와 걸프 위기가 한미 관계를 껄끄럽게(Strain)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 국장은 “걸프 사태와 관련해 한국이 지원 약속 이행에 필요한 추경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돼 현재 집행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며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조만간 미국에 대해 5000만불의 현금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연말까지 화물 항공 운송 지원 24회, 해운 운송지원 3회 등 총 1700만불 상당의 지원을 완료하고, 항공수송 지원의 경우 3월 말까지 선박 수송을 포함해 3000만불 범위 내에서 2회 정도의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 잭슨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 보좌관은 “미국 언론이 한국이 지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다소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더글라스 팔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도 “한국이 아직도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있는 미국인도 적지 않다”고 몰아붙였다.
이에 반 국장은 “군 의료단의 사우디 파견 문제를 한국의 의료단 파견 의사 통보에 대한 사우디 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며 “우리 정부의 군 의료단 파견 추진이 다소 늦어진 이유는 당초 군 의료단 파견 문제를 미측과 협의하던 중 미측이 뒤늦게 이 문제를 사우디 측과 직접 협의하라는 권유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팔 보좌관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에 치중한 나머지 미국과의 관계나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을 위한 지원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나 하는 인상을 가졌다”며 “그러나 SOFA 개정 문제, 방위비 분담, KFP 사업 동의 등이 원만히 타결되고, 한국 정부의 P3C 대잠함 초계기 구매 결정 등은 우리의 우려를 씻어 주었다”고 말했다.
잭슨 보좌관은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한 한국의 지원에 감사드리며, 적절한 시기에 추가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한 한국의 지원과 한미 통상 문제는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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