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일 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미국산 앵무새’라고 독설을 내뱉은 지 이틀 만에 거리낌 없이 북한 주민을 챙기는 장면을 연출했다.
김 총비서는 민생·경제 분야를 위해 대내분야에 집중하고 김 제1부부장은 대남·대미 등을 담당하며 대외분야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이 내치와 외치를 극명하게 분리해 통치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이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현대적으로 일떠서게 되는 보통강 강안다락식 주택구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서 김 총비서와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과 함께 공사장 현지를 돌아봤다고 전했다.
김 총비서가 현장을 찾은 시점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신문이 지금까지 최고지도자의 행사 일정을 다음 날에 보도해 온 것을 감안하면 전날인 3월31일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점은 김 총비서 동생인 김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문 대통령을 향해 비난한지 이틀만이기도 하다.
김 부부장은 지난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문 대통령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발언에 대해 ‘미국산 앵무새’ ‘뻔뻔스러움’ ‘자가당착’ ‘철면피함’ 등 거친 언사를 동원해 비난한 바 있다.
김 부부장의 거친 언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것은 지난 달 16일부터다. 당시 김 부부장은 ‘3년 전 봄날’은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대남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협력이나 교류 관련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 남북군사분야합의서 파기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이후 북한은 25일 유엔 대북제재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경고차원의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발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당일에도 김 총비서는 보통문주변 강안지구에 호안 다락식 주택구와, 새로 생산한 려객뻐스시제품(여객버스시제품)을 료해(파악)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3일 김 총비서는 올해 첫 현지지도로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 송화지구의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착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 총비서의 움직임은 그가 대외분야에서는 분리된 행보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총비서는 오롯이 북한 주민들의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외치에는 한 발 떨어져서 내치에 집중하는 모습인 셈이다.
이는 김 부부장이 대외적으로 독설을 내뱉으며 악역을 맡고 있지만 추후 김 위원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권을 가지고 나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김 부부장의 말로 현재 주도되고 있는 북측의 대외 전략이 언제든지 북한 당국의 이익이나 셈범에 따라서 번복되거나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상 최고 지도자의 결정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면서 남북·북미 등 대외 관계에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김 총비서와 김 부부장의 역할 분담은 지난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될 때에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지난 2020년 6월 초 일부 탈북민 대북전단(삐라) 살포에 반발할 때 김 부부장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대적사업을 주도했지만, 김 총비서는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통해 강경 군사계획을 막판 보류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남북 관계의 파국을 막은 것은 김 총비서였던 셈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투트랙 전략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이 앞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협력이나 교류 관련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 북남군사분야합의서 파기를 언급했지만, 최종 승인자는 김 총비서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오는 2일(현지시간) 한미일 안보실장회의가 예정돼 있으며 이른 시일 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추후 김 총비서가 어떤 최후의 결정을 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결국 한미 당국이 북한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이후 발신되는 대북 메시지나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의 기조 등이 북한의 움직임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측을 향해 사전에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제시했고, 우리 정부 측에도 ‘합의를 이행하는 만’큼 북측도 움직일 것임을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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