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거취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차기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가운데 ‘대통령 빼고 다 해봤다’는 정 총리의 ‘스펙’이 눈길을 끈다.
기업인 출신에 6선 의원, 국회의장과 총리까지 지낸 화려한 경력이다. 그러나 퇴임에 즈음한 정권 말,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이런 경력이 대선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여권에 따르면, 정 총리는 차기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4·7 재보선이 끝난 뒤 이달 안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전날(1일) 총리 브리핑에서 그간 차기 대선 도전에 관한 질문에 ‘총리로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주력하겠다’고 말을 아낀 것과 달리 “거취 문제는 대통령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순리”라고 말한 자체가 사임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에 정 총리는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 등을 통해 거취 문제를 논의하고, 사의를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지금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쌍용그룹에서 십수년을 근무하며 임원까지 지낸 기업인 출신으로 실물 경제에 밝다.
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 등과 함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영입돼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후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4선, 서울 종로구에서 2선 등 내리 6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민주당을 떠나 합류해 ‘친노’로 분류되며, 참여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의 친구’ 문 대통령과는 18대 대선의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경쟁하기도 했으나, 줄곧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당 대표를 세 차례 역임하면서 전국단위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도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전반기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이런 정치와 행정 경험으로 정 총리의 인품, 능력과 리더십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국회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신사적인 의정활동을 한 의원들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21회 중 무려 15회를 받기도 했다.
‘SK계’로 분류되는 의원만 수십명에 달해 21대 국회에도 SK계 의원이 주축이된 공부모임 ‘광화문 포럼’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스펙’이 곧 대선 후보의 경쟁력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정 총리의 고민이 깊어진다. 단적으로 ‘2인자’인 총리 출신 중 대권을 거머쥔 사람은 없다. 이회창 전 총리가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갔으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여권의 대선 주자 중 가장 앞서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스펙’으로 승부하기보다 개인기가 강점이다. 단적으로 정 총리와 이 지사는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자수성가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변호사 출신인 이 지사가 특유의 추진력과 거침없는 언변을 바탕으로 기초지자체장에 당선된 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기회로 삼아 성장한 ‘개성파’라면, 정 총리는 1995년 정계 입문 당시부터 지금까지 26년간 차곡차곡 정치 경력을 쌓아온 ‘정통파’다. ‘스펙’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 두 사람이다.
그러나 이 지사는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조사한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23%를 기록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정 총리는 1% 미만을 기록해 순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한 뒤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다면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곧바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경우 오히려 총리 재임 시절 차기 지도자 선호도 1위를 기록했고 이후 정치행보를 하는 동안 지지율이 떨어졌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에서 ‘전직 총리’라는 경력 자체도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각을 통할했던 입장에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차기 주자로서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 총리로서는 총리직을 사임한 뒤에는 본인의 정치 경력을 내세우기보다는 본인의 대중적 매력이나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