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때 윤증현 장관 842일 기록 깨
한국 경제 축복인가 재앙인가
존경 받는 경제 首長 되는 길은?
홍남기 부총리 경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일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라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4월 1일자로 이명박 정부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재임 기간 842일을 넘겼다. 경제 관료의 역사를 새로 쓴 홍남기는 정통 관료들이 포진한 기재부에선 비주류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KS(경기고-서울대)가 아니면 출세하지 못한 경제관료 사회에선 그는 ‘고졸 신화’를 쓴 김동연 전 부총리처럼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충실히 맡은 바 직무를 다 하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놓고 양론이 엇갈린다. 경제 수장(首長)으로서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청와대가 부처를 장악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관료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켰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홍남기는 한국 경제관료사(史)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깨알 같이 적은 맛집 리스트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파견돼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의 비서관을 지낸 그는 2007~2010년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기획재정부가 파견하는 재경관을 지냈다. 기재부 에이스 공무원들이 나오는 자리였다. 2009년 워싱턴특파원으로 발령 받아 인사 차 들른 그의 사무실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역대 워싱턴 재경관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워싱턴 생활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A4 용지 두 세장을 건네줬다. 워싱턴의 맛집 리스트였다. 레스토랑 이름과 주소 뿐 아니라 특징, 어떤 사람과 가기에 적합한지 등을 꼼꼼히 적어 놨다. 틈날 때마다 방문한 음식점을 직접 정리해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고위 당국자들이 많은 만큼 밥이라도 한번 사야 하는 입장에서 작성한 것으로 치밀한 기록에 적잖이 놀란 기억이 난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기재부로 복귀하면서 발령 받은 자리가 기재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이었다. 워싱턴 재경관이 가기엔 한직(閑職)이었다. 그는 이게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작별 인사차 찾은 사무실에서 자료를 하나 줬다. 이삿짐을 꾸리는 절차와 렌트한 주택에서 나갈 때 벽에 있는 흠을 어떻게 처리해야 집주인에게 벌금을 물지 않는지, 이런 저런 가재도구를 나눠주고 남은 것은 어떻게 처분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깨알처럼 적어놓았다. 이삿짐을 싸면서 만든 것이라며 나중에 특파원 임기를 마칠 때 참고가 될 거라고 했다.
10년도 지난 얘기를 하는 것은 이런 ‘기록 리스트’가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문서로 남겨 후임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부처에서 나온 적지 않은 공무원을 대사관에서 만났지만 그만큼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정되지 않은 관료의 길
그는 마지막 공직으로 여겼을지 모를 복권위 사무처장에 이어 기재부 대변인과 정책조정국장을 지냈다. 그러나 핵심 보직은 아니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을 나가 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박근혜 정부의 실세 유민봉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의 눈에 띈다. 기자회견장에서 흰머리를 휘날리는 유 교수는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총괄간사로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알리는 핵심 멤버였다.
홍남기는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을 모시는 기획비서관 자리로 함께 청와대에 들어간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에 근무한 동문인 한양대 실세 참모와 가깝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유 수석은 3년 내내 청와대에서 홍남기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통령국정기획비서관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대부분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꼬박 3년 박근혜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인 2016년 1월에야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승진했다. 그의 꼼꼼함과 성실성이 돋보인 듯 박근혜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은 ‘적폐’로 몰린 상황에서도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조정실장에 이례적으로 발탁됐다. 전임 정부의 정책 궤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가 관가에 회자(膾炙)됐다.
업무에 지나칠 정도로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낙연 총리를 모시면서도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을 잊지 않았다. 홍남기였기 때문에 총리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뒷얘기도 나돌았다. 2018년 12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충돌하면서 사표를 던지자, 이번엔 경제부총리로 영전했다. 복권위 사무처장을 마지막 공직으로 여기던 그가 최고 경제사령탑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오르기까지 이런 역전의 드라마도 없었다. 부하 직원이 과로사를 하는 등 이 총리의 집요한 업무 스타일에 이골이 나기도 했겠지만 그는 “이 총리가 엄중한 상사였지만 배울 점도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경제운용 리더십 못 보여준 아쉬움
윤증현 전 장관을 제치고 최장수 경제부총리가 됐음에도 그가 보여준 경제 수장(首長)으로서의 리더십은 언론에서 후한 점수를 못 받는 것 같다. 청와대가 부처에 만기친람(萬機親覽)하면서 관료 사회를 손에 움켜쥘수록 그가 설 자리는 좁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현 김상조 같은 문재인 정부의 ‘성골(聖骨)’ 출신 교수들이 경제 컨트롤타워를 대신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외교정책에서 별 실권이 없어 보여 외교가에선 ‘인형’이라는 굴욕적인 소리를 들었듯 문재인 청와대는 홍남기에게 경제 부처를 총괄하는 실권을 주는 데 인색했다.
오죽하면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 경제부총리가 병풍처럼 옆에 앉아 있어야 했을까. 부동산 금융 등 경제 장관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에 바빴고, 시장에는 기재부가 경제 부처를 총괄한다는 메시지를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장의 사진은 권력의 서열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정책의 파워가 누구에게 쏠려있는지 시장에서 모를 리가 없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옆방에서 다 들을 정도로 정책에 이견을 보인 청와대 참모들을 고성으로 들이받은 뒤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관가에 나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그립을 세게 쥐지 않으면 관료들의 반기를 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시기에 경제 부총리를 한 것은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부총리는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청와대도 설득해야 하는 엄중한 자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경제에서만큼은 당대 최고의 관료에게 맡기며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당신이 경제 대통령이야”라는 한마디로 경제정책의 전권을 줬다. 1980년대는 ‘3저 호황’이라는 우호적인 대내외 경제변수도 있었지만, 그 때만큼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적은 없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반(反)정부 데모에 밤낮을 새면서도 취직 걱정은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이규성 장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윤증현 장관은 관료 사회의 ‘구루(Guru)’라고 부를 만큼 리더십과 소신, 경제 철학이 돋보여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DJ 정부에서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은 “대차대조표도 모르는 사람을 공기업 감사로 낙하산 보내면 어떡하느냐”고 청와대를 향해 일갈하는 뚝심도 보였다. 진념 경제부총리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그 앞에선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경제부총리의 위상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청와대에서 문재인 캠프 출신들을 노골적으로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리 꽂아도 홍 부총리가 쓴 소리 한번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지난해 청와대와 민주당이 재난지원금을 무차별적으로 투입하려고 했을 때 홍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면서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결기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만류로 단 하루 만에 사의를 거둬들이는 해프닝에 그쳤다.
●경제관료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청와대가 경제장관 인사 기준으로 말 잘 듣는 ‘우리 편’만 선택한다면 우리 경제에 부담을 줄 뿐이다. 경제 부총리를 정부 곳간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로 생각한다면 홍 부총리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국의 경제부총리에게 결국엔 꼬리를 내린다는 별명의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나 매번 항복만 한다는 ‘홍백기(홍남기+白旗)’ 같은 치욕적인 별명이 따라 붙은 적이 과거에 언제 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홍 부총리가 청와대와 여당의 나라 곳간 헐기에 반대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지금까지 국민들은 여러 번 봐왔다. 젊은 세대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막기 위해 직을 던지고라도 막겠다는 결기를 보여준 적이 없다. 홍 부총리는 지난 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데 7~9년이 걸렸다. 현재 속도라면 40%대에서 50%대로 이르는데 2,3년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 경제는 국가채무 1000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찔끔찔끔 생색만 내는 퍼주기에 그칠게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곳에 집중적으로, 그리고 임팩트 있게 나랏돈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제부총리는 오래 한다고 해서 시간에 비례적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겨 쓴 급전이 미래 세대가 짊어지고 가야 할 고단한 짐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면 그 책임을 경제 부총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홍 부총리를 한낱 ‘예산 기술자’로 여긴다면 윤증현 장관을 제친 그의 관록이 명예스럽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라는 역병(疫病)으로 세계가 비상 상황이더라도 한국은 미국처럼 기축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늘려놓은 나라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할 미래 세대의 짐이다.
홍 부총리의 진로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정세균 총리가 4월 재·보궐 선거 후 대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제부총리까지 교체하기엔 국정 운영에 부담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편에선 행시 세 기수나 후배인 이호승 대통령정책실장과 호흡을 맞추기에는 부담스럽다는 평가 또한 없지 않다. 어찌 됐든 성실하기로 소문난 홍 부총리가 성공해야 한국경제 호(號)가 거센 파고를 헤쳐 나갈 수 있다. 누구보다도 그의 성공을 비는 입장에서 한국 경제 관료의 역사에 그가 코로나 시기 국난을 헤친 경제 수장(首長)으로 기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퇴임 후 하늘 같은 역대 부총리들 앞에서 문재인 청와대의 경제 실정을 그나마 몸으로 막아낸 강단 있는 경제관료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청와대와 여당의 무리한 요구엔 ‘노(NO)’라고 말하면서 직을 걸었던 강단 있는 경제 부총리, 최장수 경제 부총리 기록이 우리 청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래서 그가 정부 청사를 떠날 때 수많은 후배 공무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존경 받는 상사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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