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재보궐선거 참패 성적표를 받아든 더불어민주당은 일주일째 패배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소장파인 김해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이 상태로는 대선·총선·지선 이런 선거가 문제가 아니라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라며 “초선 의원들이 용기를 내 당 쇄신을 위한 불길을 지폈는데 불과 며칠 만에 어렵게 타오른 쇄신의 불길이 매우 빠르게 식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앞서 조국 사태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가 ‘친문(친문재인)’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 세례를 받고 있다. 그는 “조국 사태만으로 패배한 건 아니다. 그러나 여러 패배 원인 중에 하나 요인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는 그간 굳이 먼저 언급하지 않는, 소위 말해 금기시된 이슈였다. 조 전 장관을 옹호한 강성 지지층과 의원들은 검찰 개혁 불씨를 키우는 방식으로 조국 사태의 부당함을 표출해왔다.
다만 차기 대선 교두보인 보선에서 참패하자 입을 닫고 있던 의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조국 사태 책임론도 등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추미애 전 장관에 대한 비판과 이를 제어하지 못한 당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4선인 노웅래 의원은 “조국 사건, 추·윤갈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당이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못 했다”면서 “그런 부분이 쌓였다가 결국에는 LH 투기 등이 폭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재선인 박용진 의원은 “추 전 장관의 거친 언행과 절차를 지키지 않는 막무가내식 장관직 수행을 당에서 제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초선인 2030의원 5명은 지난 9일 입장문을 내고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점철된 (검찰개혁) 추진과정에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잃었고 오만과 독선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 국민들께 피로와 염증을 느끼게 했음에도 그것이 개혁적 태도라 오판했다”고 말했다.
81명에 달하는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우리는 국민적 공감 없이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해 후보를 낸 뒤 귀를 막았다”며 반성했다.
이에 강성 당원들은 2030의원을 ‘초선5적’이라 부르며 원색적인 비판글을 쓰거나 후원금 반환운동 군불을 때고 있다. 일부 지지자는 SNS에 이들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도 “조국과 검찰개혁이 문제였다면 총선 때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강성 의원들과 지지층은 조국 사태 책임론에 대한 대척점으로 ‘언론 보도’를 패배 원인으로 지목해 맞서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선거 다음 날 패배 원인으로 “꼭 이번 선거만 아니라 꽤 오래됐는데 이번 선거에서 (편파 보도가) 좀 더 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날 김용민 의원은 “보궐선거 민심은 불공정에 대한 분노”라며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중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자 ‘내로남불’의 상징이 된 LH사태에 대해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첫 일성으로 “내로남불 수렁에서 빠져나오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국 사태’ 거론으로 촉발된 강성 친문과 비주류의 충돌이 가열되고, 초선이 그 촉매제 역할을 하는 양상이 벌어지자 일각에선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108번뇌’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원팀’에 균열이 생길 ‘다른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에 우려가 나온다.
반면 조국 사태 등 일련의 상황에서 당의 목소리가 ‘원팀’이라는 대의 아래 극도로 정제돼 왔던 점 또한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꼽힌다.
5선인 이상민 의원은 지난 9일 4선 이상 중진 모임을 가진 후 “지금까지는 당이 너무 일색이었다고 할 정도로 이견이 없었던 점이 하나의 반성 지점”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인데 더불어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저부터 반성하는 지점이다. 청와대도 당도 돌아봐야할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초선들의 행보에 “이번에는 제각각이 아니라 초선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상당히 바람직한 것”이라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조 전 장관)을 한 사람이 소수 특권층만이 했던 그러한 것은 부끄러운 것 아니냐. 아무 잘못이 없고 멀쩡한 생사람을 때려잡은 건 아니다”라며 감쌌다.
당내 세대·계파 갈등 조짐은 곧 있을 원내대표·당대표 선거를 전후로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단, 초선들이 입장문 발표 후 단체행보에 다소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어 선거 참패 원인에 대한 목소리가 강성 주류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일원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대표 주자인 친문 핵심 홍영표 의원은 “조 전 장관 자녀의 입시 문제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에 부족했다”면서도 검찰·언론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원내대표에 도전한 다른 친문 핵심 윤호중 의원은 조 전 장관 사태가 재보선 참패 원인으로 꼽히는 것에는 “이미 1년 반 전에 있었던 일”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른 원내대표 주자이자 비주류로 분류되는 박완주 의원은 선거 패배 원인에 대패 “지난 1년, 침묵과 방관의 태도였다. 저 또한 공정의 문제가 터졌던 순간에도, 성 비위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며 “조국 사태 자체를 논하는 것이 금기를 넘는 것처럼 하는 당내 문화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