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 하원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85·사진)는 1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전 대사는 청문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 전 대사는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민주당 인사들도 우리 정부가 북한과 인권을 대하는 모습이 생각과 달라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정부가 북한 지도자만 상대하려 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소홀히 하면 미국뿐 아니라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이 한국을 예전만큼 신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전 대사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보수 정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은 건 (접경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기 싫고 김정은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어서 대북전단을 금지한 것이다. 과거와 금지 취지가 다르다”고 했다.
이 전 대사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국민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을 현 정부의 문제로 꼽았다. “국민에게 북한 (내부) 상황과 통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좋은 면만 보여주려 한다”는 것. 이 전 대사는 “우리가 대화의 주도권을 갖고 안보 위협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을 도와야지 안보도 허술하게 하면서 대화만 하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사는 청문회를 주도한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실이 추천해 청문회 증인으로 나섰다. 그는 “미국이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내가 아는 대로 글로 써서 미국의 지인들에게 돌린 내용이 미국의 한 군사안보 잡지에 실렸다”며 “청문회를 준비하던 스미스 의원실이 그걸 보고 내게 증인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스미스 의원에 대해 “스미스 의원이 한국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 놀랐다”며 “문재인 정부가 인권 문제를 상당히 소홀히 다루고 있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인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전 대사는 1996년 국내 최초의 여성 대사(주핀란드 대사)에 부임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주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 전 대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K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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