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23일 여권 내부에서 회람된 ‘LH(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 보고서와 관련해 이같이 토로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이 당정 협의를 거쳐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LH 파문의 원인이 된 토지 및 신도시 개발 권한을 LH에 그대로 남겨두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달 LH 파문 이후 “해체 수준의 LH 혁신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이대로라면 LH 혁신안은 일부 조직을 떼어내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 여권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쳐”
23일 정부와 민주당 등에 따르면 당정은 LH 투기 사태 이후 그동안 △LH의 조직과 기능 축소 및 합리화 △투기재발 방지책 마련 △경영혁신 강화 등 세 가지 갈래로 혁신안을 마련해왔다. 이 중 두 번째인 투기재발 방지책의 경우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했다는 게 당정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남아 있는 LH 혁신안의 핵심은 조직, 기능 정리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LH 혁신방안’ 보고서는 이 조직 및 기능 개편 방향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문제는 LH 관계자조차 “핵심인 토지 및 신도시 개발 관련 조직과 기능은 그대로 남겨두게 되는 무늬만 혁신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도시 개발 정보를 LH 직원들이 미리 입수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LH의 토지 및 택지 조사 기능을 한국부동산원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제 혁신 방안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토지 조사와 택지 개발을 서로 다른 기관에서 맡으면 택지개발사업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발 사업지 결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방안도 고려 중이지만 “개발 권한을 가진 기관이 많아질수록 보안이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청와대는 “이 정도 수준으로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겠느냐”는 기류가 강하다. LH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으면 내년 대선에서도 4·7 재·보궐선거 참패의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여당 의원은 “지난달 초 LH 파문을 기점으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보고서를 받아본 청와대도 대단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안다”며 “추후 당정 협의를 통해 보완해야 할 점들을 추가로 발굴해 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현재 혁신안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 당정의 딜레마 “2·4대책도 추진해야 하는데…”
청와대와 여당의 이런 불만 기류는 기재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확정된 방안이 아니고 그동안 내부적으로 검토한 대안 중 하나”라며 “확정안이 나오기 전까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기재부는 다음 주로 예정된 LH 혁신안 관련 당정협의를 앞두고 주말 사이 당청의 지적 사항들을 보완한 새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재부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당장 2·4대책과 3기 신도시 추진 등 현재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부동산 정책을 사실상 LH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LH의 택지 개발 관련 기능을 당장 분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공급 대책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 부동산정책의 핵심이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주택 공급대책이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토대로 세부적인 LH 기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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