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백신 스와프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가운데 정부는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에 참가하지 않고도 미국 정부 등 쿼드 국가들과 백신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쿼드 백신 파트너십”을 명시하고 이를 통한 백신 생산 협력을 강조한 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백신 기업 화이자로부터 추가 백신 공급 약속을 얻어낸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스와프도 미국의 ‘선의’에 기댈 게 아니라 쿼드 차원의 백신 협력에 동참했다면 ‘동맹의 기여’를 내세워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
다음 달 하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 스와프 등 당장 다음 달과 6월에 닥칠 ‘2분기 백신 가뭄’을 해결할 협력 방안은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 美, 日과 “쿼드 파트너십 통해 백신 협력”
정부 당국자들은 23일 “꼭 쿼드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미국은 물론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 참가국들과 개별적으로 백신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쿼드 국가들과 양자 관계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백신 관련 협력이 진행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 쿼드를 통한 백신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백악관은 16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미일 간 경쟁력과 회복력의 파트너십’ 자료에서 “미일은 쿼드 백신 파트너십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코로나19 백신 생산과 조달을 제공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정상 공동성명에서는 “양국은 팬데믹을 끝내는 데 필요한 글로벌 백신 공급과 생산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언론은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자국 생산 백신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쿼드 백신 파트너십’을 구상했다고 본다. 쿼드 백신 파트너십은 쿼드 참여국들이 기술과 재정을 투입해 인도의 대량 백신 생산 시설을 통해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 등에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계획. 자국산 백신 물량을 선점해온 미국이 쿼드를 통해 세계에 대한 기여를 높이겠다는 외교적 계산도 깔려 있다.
백신 협력이 쿼드나 미중 갈등과 관련 없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미국은 백신을 외교안보 문제와 연계시킨 것. 외교부는 23일 “미국이 백신 여유분을 외국에 제공하는 것과 쿼드 참여는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쿼드 백신 파트너십에 참여하지 않은 한국이 백신 스와프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쿼드에 동참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백신 협력만 하겠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 정상회담서 ‘백신 가뭄’ 당장 해결 어려울 듯
청와대는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이 의제에 포함될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 간 백신 스와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상회담에서도 백신 관련 마땅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 의제 공개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이 다음 달 하순 열리는 만큼 하반기 백신 물량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백신 공급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당장 급한 2분기 백신 수급은 의제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것. 다만 한국이 백신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 차원에서 미국산 백신의 위탁생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대한 여권의 불만을 반영한 듯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날 CBS 인터뷰에서 미국이 화이자 등 자국산 백신의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미국이 그런 깡패 짓을 하겠느냐”며 “상당히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계약임에도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계약을 제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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