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야권의 ‘합당 논의’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서로 다른 ‘통합 셈법’을 두드리면서 ‘야권 통합 시간표’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지난 16일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결의하고 통합 논의를 서둘렀지만, 이내 ‘급할 것은 없다’는 기류로 선회했다. 국민의당도 합당을 늦추면서 안철수 대표의 ‘몸값’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대표는 25일 서울 마포구에서 ‘서울시당 간담회’를 주재한 뒤 기자들을 만나 “당원들의 진솔한 의견을 들었다”며 “(합당에) 찬성하는 분도 있고, 반대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날 서울시당 간담회를 끝으로 합당에 대한 전국 당원의 의견을 수렴했다. 정치권은 국민의당 전국 순회 간담회를 기점으로 ‘합당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안 대표는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안 대표는 “찬성하시는 분 중에서 이러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조건부 찬성’을 하시는 분도 많이 계셨다”며 “내일(26일)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가능하면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형태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당원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당원투표, 설문조사 등 후속 절차가 남았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이 지도부 교체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도 ‘합당 장기전’의 무게를 더한다. 국민의힘은 오는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합당 논의를 이끌 수 있는 시간은 닷새 남짓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시점을 고려하면 합당 논의는 6~7월까지 미뤄질 공산이 크다.
주 권한대행도 ‘조기 합당’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다. 그는 이날 오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그쪽(국민의당) 결론이 나면, 그 결론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할지 정할 것”이라면서도 시점에 대해서는 “30일 앞이 되나, 뒤가 되나 그건 유연하게 순리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차기 대권에서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합당 협상’을 지렛대 삼아 ‘몸값’을 높이는 전략이다. 직접 대권주자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당 당원 간담회에서는 합당에 대한 의견 이외에도 ‘안철수 대표가 야권 대선후보로 출마해야 한다’는 대선 역할론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서울시당 간담회에서도 한 남성 당원이 “제21대 대통령 후보는 안철수 후보”라고 외치자 당원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다른 당원은 안 대표를 향해 “한국 정치의 희망 안철수! 끝까지 갑니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안 대표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상황이다. 그는 지난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어떤 역할도 맡겠다”고 했다. 주연(대선 후보)이든 조연이든 거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야권은 ‘안철수 대선역할론’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안 대표의 ‘대망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셈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합당 논의는 내부 의견과 절차를 충분히 수렴하면서 진행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의 내부 일정과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