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잠행을 이어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잠행이 길어지면서 ‘윤석열 견제’도 여야를 막론하고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정치권은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질수록 야권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있다.
28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달 4일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후 서초동 자택에서 대권 준비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공부에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 행보는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퇴임 후 이날까지 공개 행보는 지난 2일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게 유일하다. 당시 많은 취재진이 투표장에 몰렸지만 윤 전 총장은 별다른 언급 없이 투표만 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효과는 상당했다. 선거를 불과 닷새 앞둔 시점에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가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윤 전 총장에 대한 꺼져가던 관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로 작용했다.
다시 잠행에 들어간 윤 전 총장의 소식은 지인을 통해 흘러나오는 정도다. 윤 전 총장을 만난 지인이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생각을 가졌는지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수준이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임기 2년을 채우겠다고 강조한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급하게 대권 도전을 선언할 경우 그의 행적 모두가 대권을 위한 행보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해서다. 그가 노동 분야와 외교·안보 전문가 등을 만나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잠행이 길어지면서 정치권의 공세도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뉴스1과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모습을 보고 정치를 시작부터 헛 배웠구나 싶었다”며 “간 좀 보고, 대담 나누고, 유명한 사람 옆에서 함께 뭘 하고 기자들 질문 피하면서 인기 관리나 하면서 깜짝 뭘 하겠다 하면 기획사 관리받는 연예인이지, 나라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정권 초기 야권을 상대로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끈 윤 전 총장의 ‘이력’을 문제삼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적폐수사를 지휘했던 윤 전 총장은 ‘친검무죄, 반검유죄’인 측면은 없었는지, 자신할 수 있는가”라며 “앞으로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니 이 부분에 대한 전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측면에서 입장을 밝힌다”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지역구가 대구인 점을 고려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윤 전 총장을 ‘공격’했다고 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이 야권에서도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정치학자들은 윤 전 총장이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고, 대권 도전을 한다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입장을 밝혀야 야권의 대선 준비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준비된 대통령은 없다는 측면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한 후 여러 분야를 학습해도 늦지 않다는 이유가 있다. 또 잠행이 길어질수록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는 ‘간보는’ 이미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윤 전 총장을 대체할 새로운 인물,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중도사퇴 가능성을 열어두고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은 대통령에게 결단력, 책임감 등을 바라는데 윤 전 총장의 결심이 5월을 넘어가면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낙마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잠행이 이어지면서 신비감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길어지면 대권 동력은 떨어질 수 있다”며 “늦어도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에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등판한 후 큰 타격이 없으면 지지율은 공고할 것이란 전망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야권에 대선 후보가 윤 전 총장 말고는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공격을 받아도 지지율이 빠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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