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재판 확대하는 법원, 테스트 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8일 18시 23분


27일 방문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동관 577호. 이곳은 국내 첫 영상재판 전용 법정이다. 본격 운영을 앞두고 ‘재판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실제 법정 안에 있는 사람은 판사 역할을 맡은 법원 직원이 유일했다. 원고와 피고 역할을 맡은 직원들은 각자 사무실에서 카메라·모니터 등의 장비를 활용해 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재판 자료 파일을 공유했다. 서울고법은 이 영상재판 법정을 다음 달 정식으로 개관한다. 변호사들에게 체험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법원이 비대면 영상재판을 확대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는 사태를 줄이고, 재판 당사자들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올해 ‘비디오 커넥트(VidyoConnect)’ 프로그램을 도입해 영상재판 편의성을 높였다. 비디오 커넥트는 ‘줌(ZOOM)’과 같은 화상 프로그램으로, 각 재판부별로 부여된 인터넷 주소(URL)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동시에 여러 명이 접속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영상재판 매뉴얼을 전국 판사들에게 전달했고, 변호사 등을 위한 매뉴얼도 배포할 예정이다.

영상재판을 할 수 있는 재판 범위도 넓어진다. 현행법상 민·형사 증인 신문에서 영상재판을 활용할 수 있는데 지난해 6월 민사소송규칙 개정으로 변론준비기일에서도 영상재판이 가능해졌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민사·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민사에서는 변론기일, 형사에서는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영상재판이 가능하다.

법원행정처는 형사 공판기일과 영장실질심사, 구속적부심사에서도 영상재판을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을 최근 국회에 전달했다. 피고인, 증인 등이 직접 법정에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최근 구치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는데, 구속된 피의자의 참석 없이도 법원이 구속의 적법성을 심사할 수 있는 등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영상재판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3월 형사사건에 대한 영상재판 근거규정을 신설해 영상 또는 전화 통화 방식에 의한 형사재판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영상재판을 실시간 중계하거나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재판 공개주의 원칙을 지키기도 한다.

국내에선 서울고법이 영상재판에 적극적이다. 서울고법 민사12-2부는 폭스바겐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으로 차량 소유주들이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청구 항소심 8건의 변론준비기일을 이달 13일 영상재판으로 진행했고, 다음 달 31일에도 이 사건들의 변론준비기일을 영상재판으로 열 예정이다. 서울고법은 다음 달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영상재판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도 진행할 계획이다. 권순형 서울고법 전산위원회 위원장은 “재판부별 가상 법정을 운영하면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간단한 민사 재판부터 시작해 형사 재판에서도 단계적으로 영상재판을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상재판 활성화의 걸림돌로 보안 문제가 제기된다. 제3자가 재판에 개입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판 효율성 면에서도 실제 법정에서 이뤄지는 재판보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각종 장애물(소음, 송수신 불량, 미숙한 진행)에 부딪힐 수도 있다. 주요 법원과 구치소, 법무법인 등에 영상재판을 위한 투자를 해놓고 실제 활용률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영상재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의뢰인과 변호사들도 많은 만큼 활성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영상재판을 부적절하게 녹화하거나 재방송하는 이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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