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 간 첫 회담은 일단 꽉 막혔던 양국 고위급 소통에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 정 장관이 2월 취임했지만 일본 측이 응하지 않으면서 양국 외교장관 사이엔 통화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였다. 북한과 중국 문제에서 한미일 3각 공조를 복원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두 장관의 전격 회동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장관은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한일 갈등 현안을 둘러싸고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다. 양국 간 견해차를 좁히기에 회담 시간 20분은 짧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장관은 악수는 물론 팔꿈치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기념촬영 때도 뻣뻣한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 갈등 현안에 대해 한일 양국이 접점을 찾아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우여곡절 끝에 만난 한일 장관, 팽팽한 견해차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 참가를 위해 영국 런던에 머무르고 있는 양국 장관은 이날 약 50분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를 통해 만났다. 한미일 회의가 끝난 직후 별도로 마련된 회의실로 이동해 양자 회담을 진행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 장관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주변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데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반대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반면 모테기 외상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해 앞으로 필요한 정보를 계속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뒤 “한국 정부의 대외적인 입장 표명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일본 외무성이 전했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우리 정부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것.
두 장관은 과거사 문제에서도 견해차를 확인했다. 모테기 외상은 법원이 1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 대해 “한국 측이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선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반드시 피해야 하고, 한국 측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조기에 제시할 달라”고 요구하며 한국이 해법을 가져와야 한다는 기존 논리를 되풀이했다. 정 장관은 “과거사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 측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맞섰다.
다만 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외교부는 “한일의 현안 해결을 위해 양국 간 긴밀한 대화와 소통을 지속하기로 했다”며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했다. 외무성은 “두 장관이 앞으로 일한(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려야 하고,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는 데 일치했다”고 했다. 정 장관은 회담 뒤 “어젯밤에도 모테기 외상과 오래 얘기했다”고 말했다. G7 회원국과 참가국 환영 만찬 자리에서 두 장관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美 “한미일 외교장관 대북제재 완전 이행 동의”
외교부는 전날까지도 한일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사항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두 장관이 양자회담 의사를 확인하면서 직전에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시간을 조금 줄이고 한일 양자회담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미국이 판을 깔아준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북핵 해결과 중국 견제 등을 위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해왔다.
이날 한일 회담에 앞서 15개월 만에 이뤄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미 국무부는 회담 뒤 “3국 외교장관들은 북한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핵 확산을 막고 한반도의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협력하는 데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는 이런 언급 없이 “향후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3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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