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 한·미·일 회담 후 20분 회동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협력…대화·소통 지속"
모테기, 회담 후 "솔직한 의견 나눴다" 평가
日오염수·과거사 입장차 여전…해결까진 한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출국할 때까지만 해도 언제, 어떻게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할 지 유동적인 상황이었다. 런던 현지에서 회담에 임박해 결정된 건 맞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이뤄진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월 취임한 후 전화 통화도 못했던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만남이 그만큼 어렵게 성사됐다는 의미다.
한·일은 가까스로 마주앉아 북핵 공조를 확인하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민감한 현안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고위급 차원에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관계 개선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 참석 계기로 마련된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 직후 한·일 양자 회담을 가졌다.
이는 지난해 2월 강경화 전 장관과 모테기 외무상이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 계기로 회담을 가진 후 1년 3개월 만이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 후 첫 고위급 회담이자 정 장관과는 첫 대면이다. 정 장관은 취임 후 상견례 차원에서 모테기 장관과 통화를 원했지만 일본 측에선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응하지 않았다.
한일 외교당국은 회담 직전까지 양 장관의 만남에 대해 공식 확인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회담이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치열한 신경전 끝에 회담이 성사됐다. 외교부는 일본 측에서 ‘사전 공개를 하지 말자’고 강하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일 회담이 있었고, 이후 20분간 별도 장소로 옮겨서 회담을 했다. 정식 회담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G7 외교개발장관 회의 계기에 자연스럽게 만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도 “양 장관이 G7 회의도 참석하고, 별도로 여러 나라와 양자를 잡고 있어서 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회담장에는 따로 테이블을 두지 않은 탓에 한국과 일본 국기도 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직후 외교부가 공개한 사진에는 양 장관이 뻣뻣하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하지만 양 장관 회담 직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정 장관은 회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모테기 외상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모테기 외무상도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 솔직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전날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회담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양 장관은 한일이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 장관은 북한·북핵 문제 관련 한일 양국 및 한·미·일 3국이 긴밀히 소통해 온 점을 평가하고, 앞으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에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기 위해 지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양 장관은 한일 간 현안 해결을 위해 양국 간 긴밀한 대화와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간 한일 외교당국간 실무자급 소통에도 불구하고 장관급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서 대면 회담을 갖고, 대화를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풀이된다. 지난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모테기 외무상과 만나지 못했으며, 아직 나루히토 일왕에게 신임장 제정도 못한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관계는 가치를 공유하고 지역과 한반도 평화, 세계 평화를 위해서 협력해야 하는 사이”라며 “양국 간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통역을 포함해 양 장관이 회동한 시간은 20분에 불과해 한일 현안 해결을 위한 접점 모색까지는 한계가 있었다.
정 장관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이 주변국과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이뤄진 데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반대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아울러 “오염수 방류는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 해양 환경에 잠재적인 위협을 미칠 수 있다”며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오염수 문제는 과거사와 같은 양자 현안으로 보지 않고, 보편적 해양 환경 보호와 오염, 건강 문제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태평양을 공유하는 나라들과 우려를 공유하면서도 일본을 때리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반면 모테기 외무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판결 및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대법원 판결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 모테기 외상이 위안부 판결에 대한 한국 측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며,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선 ‘현금화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며 일본 측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촉구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일본 측의 올바른 역사인식 없이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한편 미국은 한·미·일 회담은 물론 한·일 회동을 적극 주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회담이 성사된 배경으로 미국의 의향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모테기 외상이 미국의 체면을 세워줬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계속 내비치고 있다. 절리나 포터 부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역사 관련 문제에 협력하도록 오랫동안 독려해 왔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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