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비리 고발’ 김영수 예비역 소령의 ‘軍급식’ 분노
● 군납비리 고발 후 고초 겪다 제대한, 영화 ‘1급기밀’ 실제 모델
● 장병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나
● 작전 짜고 훈련시키며 급식까지 챙기느라 바쁜 군 간부들
● 총 들 사람도 부족한데 왜 군인이 밥하고 빨래해야 하는지…
“국방부가 발표한 ‘부실급식 대책’ 내용을 봤다. 앞으로 격리 장병한테 고기반찬을 10%씩 더 주겠다고 하더라. 내년부터 사병 급식비를 하루 1700원 정도씩 올리는 것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걸로 장병들 불만이 사라질까. 내 생각엔 아니다. 군대 급식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풀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영수(53) 국방권익연구소장 얘기다. 김 소장은 해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소령이다. 1991년 소위로 임관해 2011년 군복을 벗을 때까지 주로 군수 분야에서 일했다. 당시 그는 군납비리 파수꾼이었다. 군 간부들이 물품 조달 과정에서 사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부정행위에 동조하거나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대신 정면으로 맞섰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김 소장이 2006년 계룡대에서 벌어진 군납비리를 고발하자 군 수사기관은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했다. 비리혐의자가 면죄부를 받은 반면, 그에겐 철퇴가 떨어졌다. 김 소장은 ‘업무 미숙’ 등의 이유로 보직을 빼앗기고, 근무평점 0점을 받고, 개인 책상조차 없는 부서로 전출당해야 했다.
군납비리 내부 고발한 영화 ‘1급기밀’ 실제 모델
군 내부 시스템을 통해 수차례 문제를 제기해도 변화가 없자 2009년, 김 소장은 사건 전모를 언론에 제보한다. 그제야 국방부가 움직여 관련자 52명을 처벌했다. 김 소장은 내부고발을 통해 부패를 막은 공로로 2011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배우 김상경이 주연한 영화 ‘1급기밀’의 실제 모델이 바로 그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회복한 김 소장은 수훈 넉 달 뒤 전역했다. 이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분야 조사관,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 등을 지내며 계속 ‘군대 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지난해 8월 공직을 떠난 뒤엔 행정사사무소를 내 생계를 꾸리면서, ‘국방권익연구소’와 ‘청렴사회를 위한 공익신고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그에겐 군 안팎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에 대한 제보가 계속 접수된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격리자 부실 급식 문제로 국민 분노가 커진 시점에 김 소장을 만난 이유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군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크게 떨어진 게 느껴진다.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정리해 보자. 4월 18일 팔로어가 15만 명 이상인 유명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검은색 플라스틱 식기에 쌀밥과 닭볶음, 오이장아찌, 김치 등이 담겨 있는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성인 남성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에, 반찬 질도 부실한 게 분명했다. 글 작성자는 “군대에서 자가격리 중 제공받은 급식”이라며 “감옥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휴가 다녀온 게 죄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일선 군부대는 코로나19 방역 목적으로 휴가 복귀 장병을 일정 기간 격리조치하고 있다. 이들에게 밥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현실이 온라인 제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김 소장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장병들이 그런 밥을 먹을 줄은 몰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흉년에 노비를 부려도 밥을 저것보다는 잘 챙겨주겠다”는 글이 올라왔더라. 수많은 누리꾼이 “대체 누가 식재료를 얼마나 빼돌린 거냐”며 분노하고 있다.
“나도 그 사진을 보고 놀랐다. 다만 팩트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요즘 군대 밥이 그런 수준인 건 아니다. 해당 자가격리 장병이 있는 부대 식당에서도 그런 수준의 밥을 내놓지는 않았을 거다. 문제는 급식을 격리 장병한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군 급식체계는 크게 예산편성→메뉴편성→주부식 조달 및 배급→취사(조리)→배식→식사→잔반처리 단계로 이뤄진다. 많은 분이 이번 사건이 ‘주부식 조달’ 또는 ‘배급’ 과정의 비리 때문에 발생했을 거라고 여기는데, 나는 그보다는 ‘배식’이 문제였을 거라고 본다.”
- 누가 식재료를 빼돌려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건가?
“내 생각에는 그렇다. 지금 많은 분이 현장 간부의 부정행위를 의심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자 상당수가 군 복무 시절 그런 도둑질을 목격했을 테니 말이다. 나도 경남 진해에서 몸담았던 부대 식당 관계자들이 식재료를 수시로 빼돌려 내다 파는 걸 봤다. 순항훈련 보급관으로 일할 때는 부식이 주문량보다 적게 입고되는 걸 적발하고 항의해 바로잡은 일도 있다. 그 사건 여파로 인사 불이익을 받는 등 여러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쌍팔년도에 우리가 겪은 일’과 결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좀도둑’이 아니라 군 급식 시스템이 문제
- 식재료 수급 과정에 비리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누가 중간에서 식재료를 빼돌린 거라면, 해당 자가격리자가 있는 부대 식당 음식 수준도 엉망이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해당 부대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터라, 군이 잘못을 완전히 은폐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일반 병사가 먹은 식단에는 큰 이상이 없었는데 자가격리자에 대한 배식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 앞서 “누가 식재료를 빼돌려 발생한 일이 아니라면 오히려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어떤 이유에선가.
“요즘 시대에 좀도둑을 잡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부대 폐쇄회로TV 돌려보고, 몇 군데만 탐문 조사해도 누가 식재료에 손을 댔는지 금세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주부식 조달 및 배급에 비리가 없는데도 사병 밥이 엉망인 상황이다. 그때는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해진다.”
김 소장은 이 대목에서 ‘민간군사전문업체(PMC·Private Military Company)’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미군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전장에 전투 병력만 파견한다. 기지 건설 및 경비, 요인 경호, 최신형 무기 유지·보수, 식품 조달 및 병사식당 운영, 세탁 등 부대 운영에 필요한 나머지 일은 모두 PMC에 맡긴다. 이를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고 전투력을 끌어올린다는 게 김 소장 설명이다. 그는 “반면 우리나라는 간부와 사병 모두 잡무에 시달리느라 정작 나라 지키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요즘 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초급 간부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이 가장 집중해야 할 임무는 작전이다. 여기에 병사 교육·훈련·신상관리 등도 담당한다. 최근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더해졌다. 휴가자 자가격리 같은, 전례 없는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과부하가 생긴다.”
- 그렇다 해도 자가격리자가 제대로 된 밥을 먹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나라 지키러 군대에 간 청년이 말도 안 되는 급식을 받아들게 만든 건 큰 잘못이다.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내가 문제 삼는 건 그 책임을 군 간부와 동료 사병이 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지금 일선 부대는 사병 가운데 담당자를 정해 자가격리자한테 밥을 갖다주도록 하는 걸로 안다. 그 장병이 늦잠을 자거나, 담당인 걸 잊고 휴가를 가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제때 밥 준비를 못 하면 문제가 생긴다. 간부가 그것을 재빨리 확인하고 대처하지 못하면 상황이 악화한다. 나는 이게 문제라는 거다.”
- 그럼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군인들이 밥걱정 없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지 못한 군 수뇌부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보자. 자가격리를 하다 말도 안 되는 밥을 먹게 된 장병, 그들 밥을 챙겨주라는 지시를 받았을 장병, 관리 책임을 부담하는 간부 모두 대한민국 군인이다. 나라 지키려고 군대 간 사람들이다. 왜 이들이 밥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하나. 급식이 하찮은 문제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밥은 전투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장병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겠나. 내 주장은 군인이 이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도록 나라가 알아서, 시스템으로 챙겨줘야 한다는 거다.”
김 소장은 부대 급식에 PMC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로 병력자원 급감 문제도 지적했다. 2006년 제정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제25조 1항은 “국군의 상비병력 규모는 (중략) 2020년까지 50만 명 수준을 목표로 한다”고 돼 있다. 2005년 국군 상비병력은 68만1000명 수준이었다. 이를 단계적으로 감축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게 당초 입법 취지였다.
최근의 급격한 출생률 저하는 이 목표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김 소장은 “군 복무기간이 짧아진 상황에서 50만 병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입대자가 25만 명은 돼야 한다. 요즘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그만큼이 되나. 앞으로 군인 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4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국내 출생아 수는 2만1461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을 남자로 보면 1년에 새로 태어나는 남아 수는 13만 명이 채 안 될 전망이다. 김 소장은 “병력이 충분하던 때엔 입영자 중 절반 정도만 전투병으로 양성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니 일부는 취사병으로 돌려 밥하게 하고, 또 일부는 세탁병이 되도록 해 빨래를 시켰다. 지금은 아니다. 이제 군인은 총을 들고, 밥과 빨래는 민간인이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김 소장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005년 상비병력 감축 등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면서부터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 왔다. 그런데 도무지 진전이 없는 까닭을 그는 군 수뇌부에게서 찾았다.
“밥 맛있게 해줄 최선의 방법은 군 급식 외주화”
“군이 ‘급식을 민간에 위탁하겠다’고 하면 당장 ‘뒷돈 받고 저러는 거 아니냐’ 하는 말부터 나올 수 있다. 큰 이권이 걸린 일이니 의심을 사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면, 모든 일을 최대한 청렴하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현재 우리 군이 처한 상황, 급식 외주화가 전투력 향상 및 장병 복지에 미칠 영향 등을 잘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상황을 모면하려고 ‘고기 급식량을 늘리겠다’ ‘급식비를 올리겠다’ 같은 대책만 내놓으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거다.”
- 현재 한 끼당 3000원이 채 안 되는 장병 급식비를 인상하는 건 바람직한 일 아닌가.
“급식비 증액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 식재료만 더 산다고 군대 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요즘 군인들은 급식이 맛없으면 안 먹고 버린다. 대신 PX 가서 입맛에 맞는 걸 사 먹는다. 그 결과 매년 폭증하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군부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전에는 구타를 해서라도 밥을 먹였지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병이 밥을 더 잘 먹게 하려면 맛있게 해줘야 한다. 취사병이 짓는 밥과 민간 조리 전문가가 짓는 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맛있겠나. 답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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