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5·18민주화운동 제41주년 기념식이 열린 국립5·18민주묘지에 1980년 5월 광주 거리의 슬픔이 울려 퍼졌다. 기념 공연 ‘기록을 말하다’는 당시 김영택 동아일보 기자(2014년 작고)의 취재수첩 내용을 독백 형식으로 표현했다.
김 기자는 1989년 1월 26일 국회 광주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그는 5·18 당시 열흘 동안 계속된 시민 학살의 현장을 건물이나 으슥한 골목길에 숨어 꼼꼼히 수첩 3권에 기록했다.
가로 8cm, 세로 10cm 크기의 취재수첩 3권(333쪽)에 5·18 당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하늘색 취재수첩(62쪽)에 “18일 오후 4시경 공수부대 500여 명 투입. 동아일보 지사. 신혼부부 무차별 구타. (시민) 223명 전원 체포”라는 당시 상황을 적었다.
108쪽에는 “1시 일제사격(공포) 공수부대원 1000명”이라며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항해 집단발포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또 빨간색 취재수첩(89쪽)에는 “5월 27일 새벽 2시 30분 (광주 서구) 농성동 쪽에서 총성이 심하다. 3시경 학생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기록했다.
취재수첩은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폭력 작전을 계획했다는 것을 입증하며 5월의 진실을 밝히는 근거가 됐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광주청문회에서 김 기자는 1980년 5월 18일 오후 7공수부대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다음 날 과잉진압에 시민 김모 씨가 맞아 죽은 것을 처음 증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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