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은 스톡홀름 신드롬 |
태영호 의원이 미리 준비한 강연 내용 중 시간 관계상 구두 강연에서 언급하지 못한 부분 등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7일 판문점선언 3주년에 즈음하여 “불가역적인 항구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오랜 숙고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이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는데 문 대통령은 자신이 내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재 가동시켜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합의가 나왔던 2018년에만 해도 서로 3번 포옹하면서 제 살점이라도 떼여줄 것 같았던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이 세 지도자들은 지금은 “미국산 앵무새”, “변죽만 울렸다”, “내 노력에 대한 배은망덕”,“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서로 삿대질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비핵화협상 시작부터 세 지도자의 공통된 관심이 ‘TV쇼“에만 있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내실 있는 협상은 비켜간데 있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초 미북 사이 중재 역할을 시작할 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부풀려 미국에 전하는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입밖에 꺼냈을 때 적어도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란 북한이 생산한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영변 뿐 만 아니라 영변밖에 있는 핵물질 생산시설까지 의미한다‘는 점을 점잖게 확인하고 이에 대한 김정은의 반응을 미국에 전달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전술핵 개발에 자원을 총 동원하는 것을 보고서도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다“고 하고 있다. 싱가포르 합의 폐기는 실수”라며 트럼프처럼 미·북 이벤트를 다시 열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국정위기 전환용으로 ’TV 쇼‘를 벌려야 할 내부 사정도 없다. 임기 말에 들어선 우리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용 남북, 미북 쇼를 재개하려 한다면 쇼를 싫어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제라도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다”는 비현실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지난 3년 동안 더욱 증강된 북핵 공격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 향후 한미관계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중미 사이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려야 한다. 사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와 새로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공식적으로 쿼드를 언급하지 않았고, 동아시아 전략의 축도 쿼드 협력과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라는 2개의 축을 가동시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쿼드 동참에는 문을 닫았고, 한일 관계는 냉각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점차 우리 정부에 중국 견제에 동참하겠다는 입장 표명이나 행동을 요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서 보듯이 미국은 한미일 3각 관계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선차에 놓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 졌다. 지금과 같은 전략적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면 우리 정부의 입지는 계속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기계적인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북한 김정은이 제8차 당대회에서 지난 4년간 핵 무력을 줄기차게 쉼 없이 발전시켜 왔다고 했고, 앞으로 핵잠수함, 전술핵을 더 발전시키겠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명백한 입장 표명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18년부터 가동된 이후 북핵 위험이 더욱 커졌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방향을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조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 북한이 2027년 최대 242개의 핵무기와 수십 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할 것이라는 분석이 얼마 전 나왔는데도 문 대통령의 대북인식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을 미국이 알면 큰 일이다. 미국의 민주당계 전문가들도 북한 비핵화 의지를 부정하고 있다. 이렇게 시각차가 크면 앞으로 문재인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사이의 공조도 대단히 어려워진다. 지금 우리 정부의 평화에 대한 인식은 한마디로 스톡홀름 신드롬의 전형적 현상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인질이 경찰보다 인질범에게 더 호감을 갖고 인질범 편을 드는 정신의학적 현상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인질범과 인질 사이에서 유지되는 노예적 평화이고 굴욕적 평화이다. 인질범이 일방적으로 조건을 결정하는 평화이다. 인질범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인질범에게 입법권까지 헌납하면서 구걸해서 누리는 위태로운 평화이다. 이런 굴욕적 평화를 정부는 대단한 업적으로 여기면서 뿌듯해 하는 것 같다. 대한제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라를 일본에 통째로 넘겨준 걸 두고 평화를 지켰다고 칭송할 수 있나?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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