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만 다를뿐 같은 ‘이규원 사건’, 공수처-檢이 따로 조사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1일 03시 00분


허술한 공수처법이 부른 ‘중복수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으로 이규원 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검찰과 공수처가 ‘중복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법의 미비로 인해 이 검사에게 적용된 혐의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사건을 두 수사기관이 동시에 조사하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변필건)가 수사하는 사건은 이 검사가 김 전 차관 성접대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 면담보고서를 허위 작성하고 언론에 유포했다는 ‘기획 사정’ 의혹이다. 동일한 범죄 사실에 대해 공수처는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검찰은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등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3월 공수처법 25조 2항에 따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이 검사를 공수처에 이첩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이 같은 혐의는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로 분류돼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돼 있다. 이에 비해 명예훼손, 무고 등의 혐의는 공수처에 통보만 하면 될 뿐 이첩 대상은 아니어서 검찰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공수처는 사건을 넘겨받은 지 두 달여가 흐른 14일 대검에 ‘이 검사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 직접 수사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공수처와 검찰이 이 검사 사건을 두고 혐의만 다를 뿐 같은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수사를 각각 진행하게 됐다.

이 검사는 2018∼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며 이른바 ‘윤중천 면담보고서’와 ‘박관천 면담보고서’ 등을 조작하거나 허위로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허위 내용이 담긴 면담보고서 등을 특정 언론에 유출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이와 관련해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윤갑근 전 고검장 등이 이 검사에 대해 명예훼손, 무고,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가 이어지게 됐는데 특정 혐의만 떼어내 공수처에서 같은 내용의 수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법에 통보와 이첩 대상 범죄를 다르게 규정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며 “허술하게 만든 공수처법으로 인해 한 피의자를 두고 두 수사기관이 경쟁적으로 수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공수처가 검찰이 넘긴 이 검사 사건을 두 달가량 갖고 있다가 뒤늦게 직접 수사하기로 한 것에 대해 “청와대 윗선으로 향하던 수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검찰은 사건을 공수처에 넘기기 전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당시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김 전 차관 사건 재조사 과정에 개입한 단서를 포착해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 검사가 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들과 윤중천 씨의 6차례에 걸친 면담을 전후해 이 비서관과 통화한 내역 등을 확보한 상태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 검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공수처가 두 달이나 사건을 중단시켰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검찰은 공수처 수사와 별도로 조만간 이 검사와 이 비서관을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고도예 기자
#이규원#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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