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오후 백악관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지침을 완전히 해제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미사일 능력을 제한해온 지침이 풀리면 현재 800km인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이 없어지면서 북한뿐 아니라 중국 등 동북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할 길이 열린다. 한미 미사일지침이 생긴 지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게 되는 것. 다만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 미사일 안보 전략에 한국이 동참했다며 중국이 반발하고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전인 20일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교안보팀은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 미사일지침 해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구상을 갖고 있었다”며 “(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1979년 만들어진 한미 미사일지침은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는 대신 미사일 최대 사거리 등을 제한해 미사일 개발 등 국방력 향상은 물론이고 우주 개발에 족쇄가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공동성명에는 2018년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을 존중한다는 표현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정책에서 ‘최대의 유연성’을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남북 협력에 공간을 내준 셈.
한미 정상은 중동과 유럽 등 제3국에 양국 공동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위한 협력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의 가격경쟁력과 품질관리, 시설관리 등이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한국과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등 양국이 협력해 원전 산업 시장에 진출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협력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협력, 기후변화 협력도 논의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관심이 높았던 한미 백신 스와프 등 백신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두 정상이 대만해협의 평화 및 쿼드와 같은 다자적인 활동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회담에 앞서 20일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중국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단독 회담과 안보 당국자들이 배석하는 소인수 회담, 의제 전반을 논의하는 확대 회담 등 3시간여 동안 릴레이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에 앞서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삼성전자 등 기업들은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이 자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을 요구하고 있는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총 394억 달러(약 44조4235억 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박효목 기자 /워싱턴=이정은 특파원·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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