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한국 군인들에게만 백신을 주기로 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2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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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회담 뒤 두 정상, 공동기자회견·공동성명·한미파트너십 자료 잇따라 발표
인도태평양 지역 백신 공급-반도체·5G 등 미중 경쟁 기술 분야서 한미 협력
쿼드·대만·남중국해 등 중국 민감 반응 안보 분야도 공동성명에 명시
안보·경제·첨단기술 전반서 동맹으로서 중국 견제 동참하라 미 요구에 호응 기류
북한과 대화 열려 있다면서도 “북한 비핵화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다”는 바이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한미 정상은 21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연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과 별도의 한미 파트너십 자료에서 한미동맹이 기존의 ‘대북 중심 군사안보동맹’에서 인도태평양,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경제동맹,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백신 공급 협력, 미국 주도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협력, 반도체와 5G(5세대 이동통신), 6G와 인공지능(AI)등 미국과 중국이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에서 한미 협력을 명시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남중국해 문제가 회담, 공동성명,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 거론됐다. 중국 견제 성격의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문구가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안보·경제·기술 분야 전반에서 동맹국으로서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에 문재인 정부가 호응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정책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을 북한과 협상을 담당하는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하는 등 북한과 대화에 나설 준비가 있음을 보였지만 비핵화 문제에 대해 “환상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도 했다. 조속한 대화 재개를 바라는 문재인 대통령과 온도차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한미 스와프 대신 한미동맹 차원서 장병들에 백신 지원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군 장병 55만 명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은 백신 지원을 통해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는 한편 한국보다 상황이 더 어려운 국가들에게 백신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 국내 여론도 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 전인 20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세계에 대한 미국의 백신 지원 계획에 대해 “(어떤 나라에 먼저 지원하는 것이) 공평하고 지역적으로 균형 있을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에게 백신을 지원할 때 더 높은 허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었다.

한국이 상반기 백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인도 등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다른 나라들보다 상황이 좋은 만큼 일반 한국인들에게 백신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군 장병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명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먼저 백신을 빌리고 나중에 되갚겠다는 한미 백신 스와프에 대해서는 미국이 결국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 인도태평양 백신 지원 한미 백신 파트너십, 쿼드 백신협력과 일치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특히 한미 정상은 미국의 백신 관련 선진 기술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한 ‘한미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이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규모 백신 지원을 앞세운 ‘백신 외교’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미국이 견제하는 데 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같은 협력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의 백신 파트너십 방향과 같다. 쿼드는 이를 위한 백신 워킹그룹도 만들었다. 중국을 의식한 문재인 정부가 쿼드에 명시적으로 가입하지는 않지만 백신과 같은 비군사 분야에서 쿼드와 협력하기로 한 셈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한미 백신 파트너십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이 전 세계 백신 공급을 늘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백신 공급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한국도 백신의 안정적인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내가 칭송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 한국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그리고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결집해 전 세계에 대해서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 “북한 비핵화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다”는 바이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4개월간 공석이던 대북정책특별대표에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를 임명한 것은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바이든 행정부가 일단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설 준비는 됐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에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봐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 비핵화라는 말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썼다. 한반도 비핵화는 2018년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선언에 있는 표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로 비핵화를 약속한 선언에 있는 표현인 만큼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명분을 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 양국은 소통하며 대화·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다.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며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미국과 긴밀한 협력 속에 남북관계 증진을 촉진해 북미대화의 선순환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과 시간표에서 두 정상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묻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굉장히 빠르게 재검토를 마무리한 것은 그만큼 대북정책을 외교정책에서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시간표에 대해서 양국 간에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나도 문 대통령에 동의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한반도 비핵화하다. 실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진전을 이뤄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의 안보를 높이길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기 위한 선제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의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해 행해졌던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섣불리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김정은)가 바라는 것을 다 주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합법 국가로 인정받는 건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진행할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 한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지난 4개 행정부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현이) 어려운 목표”라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이 조속한 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어서 한미 정상 간 온도차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 ‘5G 중국’ 견제 6G서도 한미 협력,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한미 정상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분야 등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이른바 BBC(Bio Battery Chip) 분야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해서도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이 경제동맹, 특히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

특히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분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디커플링(단절)할 수 없기에 미국의 공급망 재편 협력이 중국과 단절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중국 견제 성격이 있는 점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의 역할 확대를 강하게 주문해온 바이든 행정부에 문재인 정부가 호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술적인 진보에 있어서도 한국과 미국이 같이 협력해 부상하는 과학기술을 같이 다듬어 나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양국 간의 협력을 좀 더 증대시켜 5G 이동통신 네트워크도 보다 더 잘 구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5G는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바이든 대통령은 4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삼성전자와 SK, LG 등에 감사를 표시하면서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우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일어설 것을 부탁한 뒤 “앞으로 협력이 더 기대된다. 이런 투자로 인해 정말 좋은 고용이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며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해 첨단 신흥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는 6G 민간 우주탐사, 그린에너지 등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6G 이동통신은 중국이 선점한 5G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이 연구와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지난달 미일 정상 공동성명에도 6G 협력이 명시된 데 이어 한미일이 중국의 5G를 견제하기 위한 6G 개발에 협력하기로 한 셈.

● 중국 극도 민감 대만 문제까지 한미 정상 논의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05.22. 워싱턴=뉴시스
안보 분야에서도 문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는 바이든 행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려는 기류가 엿보였다. 대북정책에서 협력을 얻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방침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문제든 북한 문제든 동맹 간 협력, 특히 한미일 3각 협력이 중요하다고 문재인 정부에 강조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문 대통령 앞에서 한미동맹이 쿼드와 관련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 파트너 관계는 한반도의 문제만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또 글로벌한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며 “그리고 아세안과 쿼드와 그리고 일본과의 한미일 3자 협력 관계까지도 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 것. 쿼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4자 협의체다.

특히 “문 대통령과 지역 내 안보와 안정에 대해, 예를 들어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게 한다면 대만과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서 한미가 협력하겠다고 공식화한 것.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문제 강하게 압박했느냐’는 질문에 “다행히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면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한미 양국이 그 부분에 대해서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군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제한한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됐다는 사실도 직접 밝혔다. 현재 800㎞로 제한돼 있는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사라지면 중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할 수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워싱턴=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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