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 등 미 정부가 문 대통령을 수차례 ‘H.E.’로 지칭해 해당 표현에 관심이 쏠린다.
‘his excellency’의 약자인 ‘H.E.’는 우리말로 ‘각하’라는 표현으로 통칭된다. 외교 관례상 국가 정상급 인사에 대해 붙이는 호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보낸 친서에서 김 위원장을 ‘H.E.’로 표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이전까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이름을 부르거나 지도부(leader) 정도로 표현해왔는데, ‘H.E.’와 같이 예우를 갖춘 용어를 처음 썼기 때문이었다.
이번 방미 기간 중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문 대통령 관련 게시글은 총 3건으로 3건 모두 문 대통령을 ‘H.E.’로 지칭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접견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역시 지난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문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H.E.’를 썼다. 또 백악관이 출입기자들에게 공지한 현장취재 안내문에서도 문 대통령 이름 앞에 ‘H.E.’를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SNS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타국 국가 정상에서 ‘H.E.’라는 호칭을 쓴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북, 경제, 백신 협력 등 성과는 물론, 해당 표현의 사용 사실을 알리며 미국이라는 강대국에서 문 대통령이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을 강조한 의도로 읽힌다.
실제 최근 한 달간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선 모디 인도 총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을 언급하며 모두 ‘Prime Minister’(총리)라는 표현을 썼을 뿐 ‘H.E.’라는 호칭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달 16일 해외 정상으로는 처음 대면회담을 가진 스가 총리에 대해서만 ‘my friend Prime Minster Suga’(내 친구 스가 총리)라고 지칭한 점이 눈에 띈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H.E.’라는 표현이 통상 국가수반에게 붙는 표현으로 사용여부나 배경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당 표현 사용 여부에 따라 국가 원수가 예우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건 부적절하다는 분석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뉴스1 통화에서 “외교 관례상 높은 사람을 대할 때 붙이는 말이라서 대통령에게 붙이는 것은 의도는 좋았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문 대통령을 더 높이 표현했다고는 볼 수 없다. 외교대사들에게도 자주 붙는 표현이며, 국제회의에서도 사회자에게 해당 표현이 종종 붙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직 고위 외교관도 “(H.E.는)국가원수에게 통상적으로 쓰는 경칭”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사용됐다고 해서 새롭게 조명될 만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 타국 정상과의 서한 등 교류에 있어선 ‘H.E.’ 표현이 종종 등장한 사례도 찾을 수 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미 때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당시 미 의회는 박 전 대통령을 ‘HER EXCELLENCY PARK GEUN-HY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 각하)라고 소개했다.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 부시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에게 선 골프팩과 퍼터에는 ‘His Excellency President Lee Myungbak’(이명박 대통령 각하)라고 새겨져 있었다.
한편,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우리말로 ‘각하’라는 표현은 사실상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과거 군사 정부 시절 해당 표현이 빈번했으나, 김대중 정부 시절 이후 권위주의적인 용어라는 이유로 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각하’ 대신 공식, 비공식적으로 ‘대통령님’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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