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5년 내내 ‘조국의 시간’ 될 수도” 여권 우려
회고록 발간으로 대선 앞두고 다시 ‘조국 논란’
조국, 윤석열 겨냥해 “촛불시민 경각 필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5년을 관통하는 인물이 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31일 조 전 장관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조 전 장관이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내면서 여권이 다시 ‘조국 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을 10개월 가량 앞둔 시점에서 나온 회고록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다음 선거에서도 ‘조국 이슈’가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 ‘조국 민정수석’ 시절, 윤석열 승승장구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반 청와대 참모진을 대표하는 인사였다. 집권 직후인 2017년 5월 11일 문 대통령과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 조 전 장관 등이 자켓을 벗고 커피잔을 손에 든 채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일하는 동안 검찰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거침없는 승진 가도를 달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됐던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리고 2019년에는 검찰 수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조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윤 전 총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대다수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이철희 정무수석, 지금은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 등이 당시 여당 법사위원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윤석열 카드’를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민정수석은 비서관 중의 수석일 뿐 인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현재 윤 전 총장의 행보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되는데,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포괄적 책임’을 느낀다”고 적었다.
● 서초동과 광화문을 나눈 조국
회고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에게 법무부 장관 자리를 처음 제안한 것은 2019년 봄이었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입각 대신 출마를 권했다. 처음엔 고사했던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 퇴임이 결정난 즈음 대통령께서 장관직을 다시 언급하시기에 나는 후보 검증을 받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적었다. 조 전 장관은 2019년 7월 26일 민정수석에서 물러났고, 8월 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다. 여전히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조국 사태’의 시작이다.
지명 직후부터 윤 전 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조 전 장관을 향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수사를 두고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사냥’이라고 표현하며 “(검찰이) 조국 낙마를 넘어 정권을 겨냥했다”고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이 “멸문지화(滅門之禍)의 문을 열었다”고 한 검찰의 수사 이후 서초동과 광화문은 조 전 장관 찬반 집회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문 대통령도 핵심 측근들을 불러 조 전 장관 거취 문제를 상의했다.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서초동 집회에 대해 “그 장엄한 모습에 울컥했다”며 “이 고난의 길에 나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 않았다”고 적었다.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서초동 집회와 관련해 상당 부분을 할애했지만, 광화문 집회에 대해는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광화문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는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중도층 이반이 심각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 4·7 재보선에도 소환된 조국
조 전 장관은 2019년 9월 청와대에서 장관 임명장을 받고 난 직후 문 대통령에게 “아무래도 제가 오래 장관직에 있지 못할 것 같다”며 “미리 후임자를 생각해두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임명 36일 만에 법무부 장관 직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수사를 이어간 검찰은 조 전 장관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기각한다. 반면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입시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 사이 민주당은 4·15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전 총장 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옮겨갔다.
이후 ‘조국 사태’는 4·7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또 부각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파문과 맞물리면서 ‘공정’이 선거의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참패한 뒤 초선 의원들은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그 과정상에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이 비판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책에서 “모두 겸허히 받아들인다. 담담히 수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친문(친문재인) 열성 지지층은 이들을 ‘초선 5적’이라고 부르며 문자폭탄을 보냈다.
● 회고록으로 다시 정국의 중심에
민주당이 4·7 재보궐 선거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조 전 장관은 회고록을 펴냈고 정치권은 다시 한 번 ‘조국 정국’에 휩싸였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은 다음달 1일 판매를 시작한다. 1일은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선거 생생한 민심을 듣겠다며 시작한 ‘민심경청 프로젝트’의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이었다”는 조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에 대해 민주당 대권 주자들은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이낙연 전 대표), “가슴이 아리다”(정세균 전 국무총리)며 재차 옹호에 나섰다. 친문 강경파들도 가세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는 복잡하다. 여당 내 비주류로 꼽히는 조응천 의원은 31일 페이스북에 “대권 주자들이 강성 당원들을 의식해 조 전 장관에 대해 경쟁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 당혹감을 넘어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며 “‘조국의 시간’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여당 의원도 “조 전 장관이 ‘나를 밟고 가라’고 했다지만, 지금 이 시점에 조 전 장관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회고록도 열성 지지층에게는 환영 받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역풍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지지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서문에서 김치, 밑반찬 등 시민들이 보내준 15종류의 음식 이름을 하나 하나 열거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엄호의 최전선에 섰던 민주당 김종민 의원에 대해서도 “철저히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앞장서서 해명해주었다”며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적었다.
● 조국 “촛불시민의 경각 필요해” 尹 겨냥
조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내가 자성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강남 좌파’로 정부 비판에 나섰지만, 자신의 ‘강남성’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 노력은 취약했음을 반성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흠결과 무관하게 검찰의 문재인 정부 총공격과 이에 대응하는 여권 지지층의 ‘전쟁’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에 대한 비판, 특히 윤 전 총장에 대한 날선 비판에도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총장 윤석열 눈에 국민은 검찰 앞에서 발발 떠는 잠재적 피의자에 불과하겠으나,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를 던지고 내려온 정치인 윤석열 앞에는 국민 한 명 한 명이 두 눈 부릅뜨고 준비하는 검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이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은 친구, 지인, 기자들에게 ‘나는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은 적이 없다’라고 여러 번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도 적었다.
이처럼 조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윤 전 총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차기 대선 레이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조 전 장관도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행보는 2019년 하반기부터 준비되었던 것”이라며 “촛불시민의 경각이 필요한 시간”이라고도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이 공개적으로 윤 전 총장을 성토하고 나섰지만, 정작 민주당 지도부는 당혹감 속에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조 전 장관과 관련한 공개 발언은 없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최고위 내용에 대해 “조 전 장관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앞으로 나올텐데 서로 잘 들어보고 혹여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면 잘 논의해보고 협의해보자는 정도로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조 전 장관과 윤 전 총장의 대립 구도가 다시 형성되는 것이 결코 대선에 좋은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며 “당분간 당 지도부도 발언을 자제하며 여론의 추이를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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