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가 상관들의 집요한 은폐와 회유 시도에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8일 입수한 이 중사 남편의 진술서에 따르면 이 중사는 사건 다음 날인 3월 3일 오전 직속상관인 A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보고한 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A 상사가 자꾸 한숨만 쉰다”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A 상사가 “없던 일로 해줄 순 없겠니”라고 묻자 이 중사는 “네?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당황하며 답했고, 이에 A 상사는 “아니다, 못 들은 거로 해라”라고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이 중사는 또 다른 상사인 B 준위의 요구로 저녁 자리를 한 뒤 남편에게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B 준위가 “살면서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듯한 발언을 하자 이 중사는 너무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친척에게 전화를 했다고 남편은 진술했다.
이 중사는 회유·압박한 상관 중 한 명이 과거 자신을 성추행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참담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2일 이 중사는 남편에게 “이전 회식 때도 B 준위가 엉덩이를 한 차례 때렸다. 왜 회식 때마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면서 “다들 내가 우스워 보이는 거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 중사의 남편은 A 상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위반한 회식을 숨기기 위해 아내를 협박했다고도 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A 상사는 이 중사를 따로 불러 “네가 신고하고 싶으면 신고할 수도 있지만 사건이 공식화되면 사무실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다”며 압박했다. 이에 이 중사는 “신고하고 싶지만 코로나 (방역) 지침을 어기고 회식을 나간 것에 대해 A 상사와 (성추행이 벌어진 차량을 운전한) C 하사가 징계 받을 게 너무 신경이 쓰여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남편에게 토로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중사의 남편은 사건 이틀 뒤인 3월 4일경 C 하사로부터 강제추행 정황이 담긴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받아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 수사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20비행단 군사경찰은 가해자인 장모 중사(구속)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다가 이 중사의 사망으로 파장이 커진 뒤에야 뒤늦게 구속해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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