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㊳] 헌병 동원하고 맹견 풀어 ‘예비군 윤석열’ 사냥
● 삼권분립 작동 않는 평시 軍법정
● 장군의 지위는 말 그대로 ‘왕’
● ‘中과 대립’ 대만도 평시 軍법정 폐지
● “독립적 재판” 文 일성, 진심일까
● 검찰을 軍검찰처럼 만드는 박범계案
● 공수처의 ‘자연인 윤석열’ 수사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평시 군사법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발생한 공군 A 중사의 사망 때문이다.
A 중사는 같은 부대 내의 상급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그는 성폭력을 당할 당시 녹음을 해두었고, 자신의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으며, 지체 없이 상부에 보고했다. 심지어 성폭력이 발생한 차량은 가해자의 후임인 제3자가 몰고 있었다. 증인까지 있는 사건이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은 사건 해결에 있어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를 처벌하고 자신과 다른 곳에 배치해달라는 A 중사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급자인 B 준위는 최대한 ‘좋게좋게’ 넘어가고자 했다. 피해자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며 달래려 들었다. 가해자인 장모 중사가 조사와 동시에 제5공중기동비행단으로 이동조치 된 날짜는 3월 17일. 사건 발생 후 보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상담 프로그램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A 중사는 4월 15일, 제20전투비행단 성고충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성폭력상담소가 4월 30일 내린 결론은 전혀 달랐다. “자살 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
군내에서 법적인 조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군은 국선변호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공군 법무실 소속 군법무관이 국선변호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직무유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행태를 보였다.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했다는 뜻이다.
피해자는 성폭력을 겪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군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건 초기 국선변호사를 믿고 별도의 법적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 본인의 지휘계통을 따라 사건을 보고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군은 A 중사를 버렸다. 사건을 드러내고 수사하기는커녕, 다른 부대로 전출해달라는 A 중사의 요청마저도 마지못해 들어줬다. 새로운 부대 역시 A 중사를 배척했다. A 중사는 연인과 혼인신고를 한 그날 스스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비극의 탄생
이런 비극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한두 가지로 압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군 특유의 폐쇄적 집단주의 같은 문화적 요인이 적잖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드러나는 제도적 문제가 있다. 평시 군사법정이 바로 그것이다.
A 중사 사건은 부대 내의 인맥과 관계를 고려하는 군사법정의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가해자는 8월에 전역할 예정이었다. 이에 군 검찰이 가해자의 전역만 기다리면서 시간 끌기로 일관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가해자를 구속 수사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취하면 부대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부대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회식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의 사건 은폐의 핵심 원인 아니었을까.
평시에도 군사법정은 군인 사이의 사건을 관할한다. 현행 체제에서 장군의 지위는 ‘왕’과 같다. 삼권분립은 작동하지 않는다. 군 검찰이 소속되는 보통군검찰부, 군 판사가 소속되는 보통군사법원 모두 편제상 군단급 부대의 휘하 조직이다. 군 검사는 수사 감독 및 기소 등의 재판 과정에서, 군 판사는 판결 과정에서 모두 지휘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군 지휘관은 법조인 자격이 없는 일반 장교를 재판관으로 참여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심판관 제도 때문이다. 이 또한 군 내부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지금껏 용인돼왔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군 지휘자의 뜻을 거스르는 수사와 기소 등이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렵다. 설령 재판까지 간다 해도 군 지휘자가 ‘꽂아 넣은’ 다른 군인이 판사 노릇을 할 개연성도 있다.
그나마 이게 ‘개선된’ 형태다. 2017년부터 시행중인 현행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사단급 이하 부대에서는 보통군사법원을 가질 수 없다. 그 전까지는 사단장, 즉 ‘투 스타’(2성급 장군)들도, 자신의 부대에서 조선시대의 왕과 다를 바 없는 권력을 지녔다. 여차하면 아무나 감옥에 넣고, 또 감옥에서 꺼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형식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여전히 북한과 전쟁 상태다. 휴전 상태일 뿐 종전 협정을 하지 않았다. 일각의 터무니없는 낙관적 태도와 달리 북한은 여전히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보다 훨씬 강한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대만조차도 2018년 평시 군사법정을 폐지했다.
민주공화국은 법치국가다. 군대는 치외법권이 아니다. 삼권분립이 작동하지 않는 곳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지난 6월 6일 A 중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후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이기도 하다. 그는 A 중사의 부모에게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청와대로 돌아온 후에는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최근 군과 관련해 국민이 분노한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며 “군 사법 독립성과 군 장병이 독립적으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요구했다.
이토록 집요한 내로남불
이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문 대통령의 입장에 동의한다. 사법의 독립성은 신성한 것이다. 군 장병 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있어서 마찬가지다. 독립적인 재판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는 인권의 최후 보루와도 같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문 대통령의 진심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사법부,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사하는 경찰 등은 군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가 사법 영역에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확립한 뒤 같은 기준을 군에 요구해야 설득력을 지닌다.
문 대통령은 완전히 반대 방향의 행보를 고집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한 김오수 검찰총장과 박범계 법무장관이 빚고 있는 마찰만 해도 그렇다. 법무부는 ‘검찰직제개편안’을 통해 검찰의 독립적 수사권을 사실상 완전히 박탈하려 하고 있는 반면, 현 정권에서 임명한 (아마도) 마지막 검찰총장인 김오수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직제개편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미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은 부패, 공직, 경제,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의 6대 범죄를 제외한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인지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다. 그런데 박범계의 ‘직제개편안’은 그마저도 수사하려면 법무부의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국가건 행정부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정치적 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하면 법치주의는 남아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지역별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법무장관이 검찰총장 및 검사들의 사건 기소와 공소에 개입할 수 없도록 차단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법무장관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 지휘 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가 바로 그 안전판이다. 저런 장치가 없다면 대한민국 검찰청은 일개 사단장이 쥐락펴락하던 군 검찰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범계가 요구하는 직제개편안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검사들에게 독립적인 헌법기관의 지위를 포기하고, 법무장관의 충견이 되라는 소리다. 각 지청은 ‘총장의 요청에 따라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수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륙법과 영미법을 떠나 법치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퇴행이다.
반복해보자. 현재 박범계 법무장관이 요구하는 검찰직제개편안은 검찰을 송두리째 군 검찰과 같은 권력의 개로 만들겠다는 소리다. 검찰총장을 통해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만 검사가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사단장의 승인을 받아 군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던 2017년 이전의 군사법정 체제와 다를 바 없다.
군 검사와 군 판사를 군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 군사 문제와 무관한 군인의 일반 범죄에 대해서라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왜 문재인 정권은 동시에 검사와 판사를 청와대의 권력에 굴복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는가?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있어서까지 이토록 집요한 내로남불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정훈교육 듣는 예비군을 수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수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6월 10일 보도되면석 국민은 더 큰 충격에 빠졌다. 공수처는 6월 4일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3부(최석규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한다. 일단 윤 전 총장은 ‘공직자’가 아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설령 그가 공직에 있을 당시 벌어졌던 사안이라 해도 ‘공직자’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하는 기구가 자연인 윤석열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은 상식의 선에서 납득 불가능하다.
공수처라는 조직의 태생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 법치주의가 도입된 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법치주의를 능멸하는 제도가 생긴 적은 없었다. 현재 공수처는 여당이 독단적으로 법을 바꿔 대통령이 야당의 뜻과 무관하게 처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다. 공수처를 통제할 수 있는 상위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 사법제도와 비교하자면 ‘사단장 직속 헌병+검찰’ 조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군대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군대 비유로 끝내보도록 하자. 군인 및 군 경험자들은 고위 장성들을 흔히 ‘똥별’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문 대통령은 그들의 수사권, 기소권, 사법권을 빼앗는 개혁을 하고 있다. 개혁에 원론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아마 ‘똥별’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군인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온전히 대우받을 때 우리의 국방력도 질적으로 나아진다.
공직에서 물러난 윤석열은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모자 거꾸로 쓰고 정훈교육 듣는 예비군 신세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헌병을 동원하고 맹견을 풀어 한낱 예비군을 잡으려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군사법원의 개혁을 요구한다. 이런 표리부동한 이중성이야말로 이번 정권의 본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의 현재 모습은 그가 개혁하겠다는 ‘똥별’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
#여군사망 #군사법정 #공수처 #윤석열 #신동아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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