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일 정상 약식 회담 일방 취소…독도 훈련에 딴지
文대통령 "회담 못해 아쉽다"…스가 "만날 상황 아냐"
"지지율 최악' 스가, 한일 회담 시 보수층 비판 우려"
"정부 바뀌지 않는 한 당분간 한일 관계 쉽지 않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기대를 모았던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단독 회담이 끝내 불발됐다. 당초 한일 외교 당국은 약식 회담을 약속했지만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려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특히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 등 과거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법을 요구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교착상태인 한일 관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정상회의에 참관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지난 12일 G7 확대회의 참석을 앞두고 짧은 인사를 나누는데 그쳤다. 이후 만찬장에서도 1분가량 대면했지만 약식 회담 또는 양자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민영 방송사 뉴스네트워크인 ANN은 만찬장에서 두 정상이 인사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도했다. 영상에서 문 대통령이 손짓으로 김정숙 여사를 불러 함께 스가 총리 부부의 곁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스가 총리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어 스가 총리가 먼저 자리를 떴고, 문 대통령 내외는 스가 총리의 부인인 마리코 여사와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와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일 정상 간 만남은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2019년 12월 회담한 후 1년 6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은 한일 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초 정부는 한일 정상 간 회담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풀 어사이드(pull aside)’ 방식의 비공식 회동 가능성에 기대를 내비쳤다. 실제 한일 간에는 약식 회담을 진행하자는 잠정 합의에 이르렀지만, 일본 측이 동해영토 수호훈련 이른바 ‘독도 방어 훈련’을 이유로 불응하면서 결국 회담은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G7 정상회의 계기를 포함해 그간 우리 정부는 한일 정상 간 만남에 열린 자세로 임해 왔으나 실제 현장에서 회동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일본 극우세력의 독도 침입 상황에 대비해 1996년부터 정례적으로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실시해왔다. 2008년부터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1차례씩 훈련했으며 올해는 15일부터 훈련이 시작된다. 일본 정부는 훈련 시작 후 외교 채널을 통해 항의해 왔지만 올해는 약속된 회담을 취소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냉담한 분위기는 G7 정상회의 폐막 후 13일(현지시간) 스가 총리가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과 만남에 대해 “(문 대통령이) 인사해 나도 당연히 실례가 되지 않도록 인사했다”, “바비큐(만찬회) 때에도 (문 대통령이) 인사해 왔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스가 총리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으로, 그 환경(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할)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법 없이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스가 총리는 이어 “한국 측의 움직임으로 한일 문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주장했다.
스가 총리의 강경한 태도는 최근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스가 내각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스가 내각은 지지율이 상당히 낮은 상태에서 도쿄올림픽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상황”이라며 “지금 만약 기존 입장을 바꿔 한일 정상회담이나 한일관계 회복을 다시 한번 만들어낸다면 지지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지만 한일 관계는 일본이나 한국 중에 적어도 한 국가의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힘들다는 게 지금은 나오는 얘기”라며 “(한일 관계 개선은) 한동안 쉽지 않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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