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 제1야당 당 대표가 탄생했다. 지난 총선 서울 노원병에서 낙선한 원외의 이준석 후보가 불과 1년 만에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 이미 10년이 넘은 이 대표가 특별히 새로운 인물이라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이준석 개인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이준석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준석 대표 선출의 정치공학적 유불리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여야 모두 왜 사상 초유의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준석 현상’의 본질은 여야 모두에 대한 유권자들의 최후통첩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이상 우리 정치를 지배해 온 이념 논쟁과 진영 논리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현재 여야 모두 윤석열, 이재명 등 ‘비주류’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필자 연구팀은 최근 1987년 이후 6만7000여 건의 법안에 대한 공동발의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이 결과를 보면 ‘이준석 현상’의 원인이 분명해진다.
‘협치’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정당 간 공동발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금년에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체 공동발의 중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상대 정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5.5%와 9.5%에 불과했다. 반면 자기 정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 비율은 민주당이 94.5%, 국민의힘이 83.9%에 달했다.
우리 정치가 항상 이랬을까. 1987년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매년 정치 상황에 따라 상대 정당과의 공동발의 비율이 진보 정당은 19.4%에서 79.6%, 보수 정당은 18.0%에서 53.3%를 오갔다. 1987년부터 2005년까지 평균 상대 정당과의 공동발의 비율은 약 49.4%(진보 정당)와 36.0%(보수 정당)였다. 전반적으로 정당 간 공동발의가 지금보다 훨씬 활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정당 내 공동발의 비율은 2000년대 중반까지 진보 정당은 20.4%에서 80.6%, 보수 정당은 41.7%에서 74.6%를 오갔다. 평균 50.6%와 57.2% 정도로 지금보다는 확연히 낮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서로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의원들이 여전히 국회를 주도하던 때에도 오히려 협치가 지금보다 잘됐던 것이다. 민주화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반면 현재 두 거대 정당의 핵심 인사들 중 다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정치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의 극단적 양극단화로 몰아간 장본인들이다.
실제로 2004년 이후 국회 표결 기록을 분석해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국회 처리 법안의 보수화가 뚜렷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현 정부 내내 국회가 지속적으로 진보화되면서 여야 간 표결 경향 차이가 벌어져 온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기술한 공동발의 관련 결과와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양 정당 모두 ‘개혁’을 한다면서 일방통행을 일삼아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여야를 불문하고 불과 몇 %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음에도 국민으로부터 국가를 갈아엎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제왕적 대통령’들과 집권세력 모두가 ‘이준석 현상’ 유발자들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준석 현상’은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정치적 양극단화를 초래한 현 여야 기성 정치권에 대한 최후통첩인 셈이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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