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회의장 인테리어에 집착할까 [주성하의 北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0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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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라졌던 김정은이 최근 다시 나타나 열심히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노동당 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망해가는 회사들의 공통점이 쓸데없이 회의만 많다는 것이라는데 북한도 올해 회의가 부쩍 늘었습니다. 올해가 채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당 전원회의만 3차례나 열렸습니다.

아마 북한 인민들은 이젠 무슨 회의를 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겁니다. 회의를 했다고 해서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김정은이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해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말했군요. 회의를 한다고 식량이 생겨날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김정은이 올해 어디 시찰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고 회의를 하는 모습만 계속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속 보다보니 눈길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장이 바뀝니다. 여러 회의장을 번갈아 쓰기도 하고, 또 같은 방인 것 같아도 배경이 바뀌고 의자가 바뀌거나 병풍이 바뀝니다. 한번은 큰 원탁에 앉아 했다가, 한번은 책걸상 놓고 했다가, 또 한번은 그냥 접견실 같은 분위기를 맞추어 했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바뀝니다. 김정은이 이런 것에 아주 예민하다는 증거겠죠. 회의 사진이 외부에 공개되니 없어도 있어 보이려 하는지 몰라도 아무튼 계속 회의장이 바뀝니다. 같은 회의장에서 계속 회의를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와 지난해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장 사진을 한번 모아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의장 분위기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의상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 보입니다. 빨간 의자에 앉으면 참가자들이 흰 옷으로 통일하기도 하고, 김정은만 흰옷을 입고 나머지는 검정 계열 양복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김정은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와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에 엄청 민감하다는 뜻이겠죠. 매번 열심히 회의장을 개조하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이번 주 북카페 주제를 김정은의 회의장으로 정했습니다. 무슨 회의장이 저리도 많은지 저도 놀랐습니다. 회의장 인테리어에도 돈이 참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걸 보면 식량 형편이 어려운 나라 같지도 않습니다. 세계에서 회의장에 돈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북한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비본질적인 것에 저렇게 집착할까요.

김정은은 회의장만 저렇게 계속 바꾸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중앙당 청사 안에 있는 15호 관저도 벌써 몇 번이나 뜯어고쳐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의 고향으로 알려진 원산 ‘602초대소’에도 계속 새로운 빌라들이 건설됩니다. 602초대소 인근에는 비행장이 건설됐다가 몇 년 뒤엔 또 갈아버리고 승마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전국의 김정은 별장 인근에 김정은 전용 비행장도 10곳 넘게 생겼습니다. 저렇게 인테리어에 신경 쓸 시간에 인민을 위한 고민을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래에 최근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부터 지난해 초에 주재한 회의까지 회의장을 쭉 소개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회의장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아 1년 반의 변화만 보여드립니다.



16일 열린 노동당 8기 3차 전원회의 장소. 대형 원탁에 참가자들이 앉아있습니다.




이달 7일 김정은이 주재한 당중앙위원회와 도당위원회 책임간부협의회. 뒤쪽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있는 이 방은 과거 자주 등장했던 곳으로 김정은의 기본 집무 공간으로 보입니다.




이달 4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가 열린 장소. 북한은 회의가 당 중앙위 본부 청사에서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뒤에 유리문이 보입니다


2월 24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2월 8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장소. 참가자가 많아서인지 회의장 사이즈가 커 보입니다.


지난해 11월 15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 큰 원탁에 간부들이 둘러앉았고 소나무와 송학이 새겨진 파란 배경이 눈길을 끕니다.(위) 흰 의자라는 점을 감안해 참석자들은 검은 계열 양복으로 통일해 옷을 입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7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선 장성들과 김여정을 제외하고 모두 흰 옷을 입었습니다.(아래)



지난해 8월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중앙엔 빨간 배경을 바탕으로 깔고 빨간 카펫을 깔았습니다. 반면 군인을 제외한 모든 간부는 흰 옷을 입고, 흰색 소파에 앉아 색의 조화를 맞추었습니다.


지난해 8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7기 제4차 정무국 회의. 회의장 규모가 작고 큰 흰 테이블에 참가자들이 모여 앉아있습니다.

지난해 7월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체결) 67주년 기념 백두산 기념 권총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이 회의장은 빨간 분위기로 장식했는데(위), 두 달 전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가 열릴 때는 흰 의자와 책상이 놓여있었습니다.(아래)



지난해 7월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전체적으로 원목을 사용해 회의장 분위기를 엔티크한 느낌이 나게 만들었네요.(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검은 색을 많이 강조시킨 회의장 분위기입니다.(아래)



지난해 6월 7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 원탁에 둘러앉는 구성이지만 창문이 있는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김정은만 흰색 옷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 양복으로 통일했습니다.


지난해 2월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격자형 목재를 사용해 배경을 꾸렸습니다.



지난해 2월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회의장 분위기를 화이트로 맞추고 빨간 의자를 놓아 색을 조화시켰습니다.




지난해 10월 새로 꾸린 김일성광장 주석단. 유럽풍의 흰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난간도 둥근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 넣었습니다.(위·가운데) 여러 회의실에도 둥근 대리석 기둥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유럽에서 생활한 김정은은 흰 대리석 기둥을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기존 김일성광장 주석단 모습으로 수십 년 동안 외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파격적으로 새롭게 꾸렸습니다.(아래)





김정은은 자기가 살고 있는 평양 중심부 15호 관저도 최근 10년 동안 세 번이나 뜯어 고쳤습니다. 맨 위에 올해 위성사진에 포착된 새 단장한 뒤의 관저 모습이고, 두 번째가 2015년 공사를 위해 지붕을 뜯었을 때 사진입니다. 맨 아래는 김정일이 생존해 있던 2009년 15호 관저 모습입니다.





평양 관저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원산 602초대소도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맨 위가 김정은이 이용하는 별장의 최신 모습입니다. 파란 지붕을 한 여러 건물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602초대소 인근에는 파란 색의 현대적인 건물들이 김정은 집권 후 새로 생겼는데 누가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두 번째). 초대소 인근에는 전용 기차역과 비행장이 새로 생겼는데, 원산공항을 최신식으로 꾸린 뒤 비행장을 없애고 그 자리를 승마장으로 개조했습니다.



김정은의 창성별장 인근에 생겨난 전용비행장 활주로. 김정은 집권 이후 그의 지방 별장 인근에 10여개의 전용 비행장이 새롭게 건설됐습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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