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권 도전을 암시하면서 정치참여 선언을 목전에 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시작부터 묵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22일 정치권은 윤 전 총장의 앞날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로 최 원장의 행보를 꼽는다.
최 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제 생각을 조만간 말하겠다”고 했다. 최 원장의 이 같은 답변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보는데, 그의 측근들도 이런 해석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최 원장이 조만간 감사원장에서 물러나고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 ‘행선지’가 제1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경우의 수는 국민의힘 ‘입당’과 ‘독자행보’ 크게 두 가지인데, 전자를 선택한다면 윤 전 총장이 받을 영향력은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이 불러서, 국민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겠다’는 윤 전 총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시한 ‘8월 버스 정시 출발론’(대통령 후보 경선 일정)과 자신의 입당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를 두고 석달간 이어진 잠행을 깼다고 하나 여전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호한 화법으로 일관하는 윤 전 총장, 그를 대신해 대변인이 모든 현안을 상대하는 이른바 ‘전언정치’ 등의 한계가 노출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민의힘은 일단 윤 전 총장을 보호하는 자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2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X-파일에서) 문제가 될 내용이 있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작년 한 해 내내 윤 전 총장 압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유출됐을 것”이라며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거나 특기할 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상승세를 탄 당 지지율을 기반으로 더는 당밖 주자들에게 사활을 걸지 말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민의힘은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 이후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10%P(포인트) 이상이면서 윤 전 총장이 대선 후보군 다자 대결에서 얻은 지지율을 상회하는 수치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전당대회 전까지만 하더라도 윤 전 총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당 지지율이 오르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의원들의 생각이 감지된다”며 “당 지지율이 유지되거나 더 상승한다면 이 같은 분위기는 더 공고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여전히 ‘독자행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전날 박근혜정부 국무조정실장(장관급) 출신인 이석준씨를 캠프에 영입했다. 윤 전 총장 측은 이 전 실장의 영입을 위해 윤 전 총장이 ‘삼고초려’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윤 전 총장이 당분간 독자행보를 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지율 상승세를 탄 국민의힘과 독자노선에 방점을 찍은 윤 전 총장이 ‘밀당’(밀고당기기)을 벌이는 가운데 최 원장이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다. 특히 최 원장의 국민의힘 입당은 윤 전 총장의 입지를 더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원장이 감사원장에서 사퇴한 직후 국민의힘에 입당할 경우 ‘그간의 감사원장직 수행에 다른 욕심(정치, 대권도전)이 있었다’는 여권의 공세가 몰아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정권교체란 명분을 내걸고 이른 시일 내 입당할 경우 윤 전 총장이 겪는 시행착오 등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대비효과를 얻으면서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흡수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 원장은 월성 원전1호기 감사와 감사위원 인사 등에서 정권과 대립하고 소신 행보를 보이면서 윤 전 총장과 함께 ‘공정’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여기에 두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부친이 6·25 참전용사이자 예비역 해군 대령이라는 가정사, 학창시절 수년간 몸이 불편한 친구를 업어 등하교시킨 미담, 수천만원에 달하는 기부 내역 등 개인 신상에서는 대선 후보군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재형은 윤석열의 대체재다. 지지율이 10%를 넘기고 입당을 선택한다면 대체 효과는 가속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반면, 독자노선으로 간다면 윤 전 총장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캠프를 꾸리는 것만 해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예상인데, 그 과정에서 드러날 허점과 여권발 공세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취약점이 부각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여권은 벌써 최 원장 견제에 나섰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전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현직의 (정치) 참여는 (감사원) 조직 신뢰와 관계된 것이라 논란이 될 사안”이라며 “감사원장이 출마를 언급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무소속’ 박 의장은 민주당 출신 6선 의원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문순 강원지사는 “최 원장의 정치 선언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전체 공직의 신뢰를 배신하는 행위이며 감사원의 위상을 현저하게 추락시키는 행위”라며 “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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