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표 의혹 알고도 임명, 문제되자 뒤늦게 경질…靑부실검증 심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7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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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7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전날 경기도 광주 송정지구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1년 전 인근의 송정동 땅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김 비서관이 “투기가 아니다”라고 해명한 지 하루 만이다. 특히 청와대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김 비서관의 재산 문제를 일부 파악했음에도 김 비서관을 3월 말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비서관이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이 수용했다”며 “김 비서관은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게 아니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공직자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국정운영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다는 비판을 겸하게 수용한다”면서도 “추가로 제기된 부분에 대해 불완전한 청와대 검증시스템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전자관보에 공개한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현황에 따르면 김 비서관은 본인 명의로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맹지(盲地)’인 임야 2필지(1578㎡·4907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이 2017년 6월 이 땅을 사들인 뒤 1년여 만인 2018년 8월 광주시가 이 땅 부근에 대규모 주거단지와 상업·업무시설을 조성하는 개발 계획을 승인했다.

김 비서관이 다른 토지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비서관이 신고한 2필지는 송정동 413-166번지(1448㎡)과 413-167번지(130㎡)이다. 하지만 부동산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비서관은 이 땅과 붙어 있는 413-159(1361㎡)도 소유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 22조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가 재산신고를 누락하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해임이나 징계 의결을 요구할 수 있다. 또 김 비서관은 신고한 부동산 91억2623만 원 가운데 부채가 54억6441만 원에 달해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 투기)’ 의혹까지 제기됐다.

●인사검증 때 확인, 문제 되자 뒤늦게 경질
주말 사이 여론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는 27일 회의에서 “김 비서관이 투기가 아니라고 항변하더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납득시킬 수 없다면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전날 청와대에 민주당의 부동산 투기 의혹 12명 의원 탈당 조치를 거론하며 김 비서관에 대한 신속한 신속한 거취 정리를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서관을 임명한 3월 말만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청와대가 김 비서관의 재산 현황이 공개된 뒤 여론이 악화된 뒤에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것.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내로남불’가 다시 불거지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임명된 지 3개월도 안 돼 옷을 벗게 됐다.

하지만 결격사유를 파악하고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거나 결격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 “검증의 한계”라고 발뺌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인사 검증 때 부동산 내역을 확인했고 각각의 취득 경위와 자금조달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점검했지만 투기 목적의 부동산 취득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김 비서관도 취득 부동산에 대해 향후 처분할 계획을 밝혔다”고 했다.

김 비서관을 임명하기 불과 20일 전인 3월 11일 청와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검증을 더 강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김 비서관이 송정동 필지 재산신고를 누락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거쳐 언론 검증이 시작되고 청문회를 통해 국회 검증도 시작된다”며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두 검증의 기간”이라고도 논리도 폈다.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 책임론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보다 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며 선을 그었다.

●野 “검증 부실 반성보다 꼬리자르기”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부실 검증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보다 당장의 여론 악화를 모면하려는 꼬리 자르기로 끝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투기 의혹 대상자에게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할 업무를 맡겼으니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며 “청와대가 인사 검증과정에서 투기 의혹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라면 국민 기만”이라고 했다. 그는 “자진사퇴로 끝나선 안 된다”며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과 정부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사원의 부동산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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