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 주자로 떠오른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사의를 표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최 전 원장이 7월경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1강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야권 대선 구도가 흔들릴지 주목된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저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도 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또 “감사원장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과 임명권자, 감사원 구성원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언제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겠다”고 밝혀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최 전 원장의 사의 표명 8시간 50분 만에 이를 수리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 전 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아쉬움과 유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尹 사퇴땐 입장 안냈던 文, 최재형엔 ‘정치 중립’ 언급하며 질타
文 “감사원장 임기 보장하는건 정치적 중립성 지키기 위한 것” 8시간 50분만에 崔 사표 수리 文, 최재형 감사원장 발탁 당시엔 “몸 불편한 친구 업고 다닌 판사” 崔, 월성원전 감사 놓고 靑과 충돌… 여권 “코미디”“사실상 쿠데타” 격앙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2018년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28일 문 대통령)
최재형 감사원장이 임기 6개월을 남겨둔 이날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문 대통령의 평가는 3년 6개월 전 발탁 당시와 180도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최 전 원장이 이날 오전 9시 사의 표명을 공식화한 지 8시간 50분 만인 오후 5시 50분 사표를 수리했다. 3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의 표명 1시간 15분 뒤 문 대통령이 수용 의사를 밝혔고 다음 날 사표를 수리하기까지 21시간이 걸렸다.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최 전 원장에게는 “중도 사퇴가 오히려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질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민정부 이후 감사원장 임기 중에 스스로 중도 사퇴한 건 전대미문”이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특히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최 전 원장뿐 아니라 윤 전 총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잇따라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자 청와대와 여권은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다.
○ 조국, “감사원장 맡아 달라” 연락
문 대통령은 2017년 말만 해도 최 전 원장을 발탁하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당시 청와대는 30여 명의 감사원장 후보군을 대상으로 현미경 검증을 벌였다. 하지만 여러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드러나거나 고사했다. 그러자 사법연수원 12기인 문 대통령이 13기인 최 전 원장을 기억하고 “몸이 불편한 친구를 업고 다녔던 그 판사”를 직접 언급하며 그의 의사를 물어보라고 했다는 얘기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최 전 원장은 고교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친구 강명훈 변호사를 업어서 등하교시키며 나란히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 전 원장은 사법연수원장 시절인 2017년 12월 감사원장 후보자 지명을 앞두고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은 당시 최 전 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지명 의사를 전한 뒤 여러 후보자가 고사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원장을 꼭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사 의사를 밝혔던 최 전 원장은 부친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과 상의 끝에 부친이 “국가를 위한 마지막 공직이라 생각해라”고 하자 후보직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최 전 원장을 감사원장에 지명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 온 법조인이다. 각종 미담이 많다”고 높이 평가했다.
○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놓고 갈등 폭발
하지만 지난해 4월 청와대가 공석인 감사위원 자리에 김오수 현 검찰총장을 제청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김 총장은 법무부 차관을 지낸 뒤 당시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최 전 원장은 김 총장이 친여 인사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특히 최 전 원장은 같은 해 10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을 들여다본 감사 과정에서 여권의 공세를 받으며 청와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최 전 원장은 “문 대통령이 41% 정도의 지지를 받은 걸로 아는데, 과연 국민의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급기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올해 1월 “윤 전 총장에 이어 이젠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며 비판했다.
○ 여권, “참 코미디 같은 일” 부글부글
청와대 내부는 이날 하루 종일 “정치를 하겠다고 감사원장을 관두는 것이 맞느냐”며 들끓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 전 원장을 향해 맹폭을 퍼부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최 전 원장을 향해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김오수 총장의 감사위원 임명을 거부했던 본인이 원장을 그만두고 야권 대선 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최 전 원장의 인사청문위원장을 맡았던 우상호 의원은 이날 TBS라디오에서 “참 코미디 같은 일”이라며 “윤 전 총장은 어쨌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때문에 본인이 불만을 갖고 이탈할 수 있다고 보는데 도대체 최 원장은 왜 가시는 거냐. 정말로 자가발전이다”라고 했다. 이광재 의원은 “탱크만 동원하지 않았지 반세기 전 군사 쿠데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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