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가 피해 직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건 조사, 피해자 보호 등과 관련해 규정된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타 부대 전입 이후에도 2차 가해가 빚어지는 등 군의 성폭력 사건 처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유족 측은 “아직도 엄정한 수사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9일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관련자 22명을 피의자로 입건해 이 가운데 10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지난달 1일 국방부가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수사에 착수한 지 38일 만이다.
합수단은 보직 해임된 6명 외에 이성복 20비행단장(준장) 등 9명에 대한 보직 해임을 의뢰하기로 했다. 또 성추행 피해를 국방부에 늑장 보고한 이갑숙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장(3급 군무원) 등 16명을 형사 처분과 별도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다만 수사 과정에선 20비행단 군사경찰과 군검찰 등 부실수사 의혹을 받는 관계자들은 한 명도 기소되지 않고 징계에 그쳤다. 수사를 총괄하는 공군본부 법무실 관계자 3명도 내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익수 법무실장(준장)은 수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청한 뒤 소환 조사에 세 차례 불응하다 이날 비공개로 합수단에 처음 출석했다. 유족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어떠한 경우에도 현 국방부의 수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軍, ‘女중사 사망’ 성역없는 수사 약속해놓고 영관급까지만 기소… 윗선은 손 못대
군, 중간수사 결과발표
9일 공군 이모 중사 사망 사건의 중간 수사결과에는 원소속 부대와 전입 부대를 막론하고 그를 사지로 내몰았던 2차 가해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직 내 뿌리박힌 구태적 성인지 감수성과 먹통 수준이던 성폭력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합수단은 이날 “공군 창설 이래 단일 사건으론 최대 규모인 38명에 대해 수사 및 인사 조치가 단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이 당초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던 것과 달리 지휘 책임이 있는 군 수뇌부나 합수단의 ‘제 식구’로 볼 수 있는 수사기관에 대한 합동수사가 미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새 부대서도 ‘성추행 피해자’ 꼬리표
20비행단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전출을 희망한 이 중사가 전입 오기 전부터 이미 15비행단엔 그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15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중령)은 5월 14일 부대 주간회의에서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을 와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중대장(대위) 역시 “성과 관련된 일로 추측되는 사건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휘관인 작전지원전대장(대령)은 이 중사가 2차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소문이 퍼진 가운데 5월 18일 이 중사는 이틀간 17곳의 비행단사무실을 방문하며 전입신고를 했다. 그는 5월 21일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비행단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에 무관심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3월 2일) 이틀 뒤인 4일부터 두 달간 청원휴가를 나갔는데, 본가에 머문 10여 일을 제외하곤 나머지를 상담과 조사 일정 때문에 부대 관사에서 지냈다. 부대 관사는 가해자 장모 중사나 2차 가해자 노모 준위의 관사와 수백 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게다가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이동한 시점은 사건 발생 17일 뒤였다.
○ 합수단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은 여전
그간 성추행 사건 수사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고강도 수사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한 명도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 군은 군사경찰을 총괄하는 전창영 국방부 조사본부장(준장)에게 ‘엄중경고’를 내렸고 공군 법무조직 총책임자인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준장)에게 ‘검찰사무 배제’ 조치만 내린 상태다. 합수단은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자 뒤늦게 20비행단 군사경찰 수사계장(준위)과 군사경찰대대장(중령), 20비행단 군 검사(중위) 등 3명만 피의자로 입건했다. 당시 군사경찰은 사건 신고 2주 후 가해자 조사 뒤에야 핵심 증거물인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했고 군 검찰은 50여 일간 피해자, 가해자 조사를 미뤘다.
특히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한 수사 경과는 이날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 실장을 포함해 법무실 관계자 3명은 현재 ‘피내사자’ 신분으로, 전 실장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이 지난달 16일 실시됐으나 현재까지 포렌식을 하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동의가 없으면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망사건 보고 및 후속 조치와 관련한 수사 역시 국방부에 성추행 사실을 누락한 채 보고한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대령) 등 영관급까지만 기소하는 등 ‘윗선’ 수뇌부까진 수사의 칼날이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참고인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데 군 관계자는 “혐의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통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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