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보수의 적자이자 야당의 맏아들을 자처해온 홍준표 의원을 ‘홍감탱이’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권 예비후보로 나선 데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이른바 ‘단톡방’)에서 윤 의원의 대권 도전이 화제가 됐는데, 이에 홍 의원이 “숭어가 뛴다고 망둥어가…”라는 글을 쓴 탓이다. 김 최고위원은 “재미있게 말하는 건 좋은데 오죽하면 인터넷 같은 데 보면 ‘홍감탱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내 살은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으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말이 있다. 접전일 때는 내 팔 하나는 내주고 달려들어야 상대 목을 꺾어 이길 수 있다. 파주경찰서가 입건도 하지 않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장모 사건이 기소돼 유죄 판결이 났다. 대검찰청은 윤 전 총장 장모의 모해위증 의혹 사건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윤 전 총장이 결혼하기 전 장모가 서울 시내 건물 매각 과정에서 동업자와 벌인 법적 분쟁과 관련해서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경북 포항시의 ‘수산업자’를 자처한 김모 씨로부터 포르쉐를 제공받은 것이 밝혀져 사퇴했다. 박 특검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해명했다. 윤 전 총장은 박 특검(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에서 팀장을 했으니, 이 사건도 그를 겨냥한 것일 수 있다.
후배들이 불편해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경보가 울리건만, 윤 전 총장은 예고했던 대로 돌진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이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 원자핵공학과 학생을 만났다. 그는 탄압을 발판의 기회로 삼는 것 같다. 윤 전 총장은 부장검사 때는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다. 검찰총장 시절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권의 눈엣가시가 됐으면서도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른 경력이 있다. 홍준표 의원은 이것이 불편한 것일까. 홍 의원은 2015년 파주경찰서가 윤 전 총장 장모를 입건하지 않은 것은 특혜이거나 불법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파주경찰서는 윤씨의 장모가 동업자들로부터 책임면제각서를 받고 공동이사장에서 물러났기에 입건하지 않았는데, 이는 말이 안 된다. 민사라면 당사자들 합의가 중요하니 이 각서(윤 전 총장 장모가 요양병원 설립 동업자들로부터 받았다는 ‘책임면제각서’)에 따라 장모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 형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범인 넷이 불법을 저지른 후 ‘한 명은 혐의 없는 것으로 하자’고 합의했더라도 국가는 그를 처벌해야 한다. 이 각서를 만들 때 윤석열은 결혼한 다음이었으니 조언해주지 않았는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수사해야 한다.”
홍 의원 미간엔 ‘내 천(川) 자’가 그어져 있는데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그는 상대 허점을 파고들어 희화화(??化)하는 능력도 있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의 말을 시원해하고 재밌어 한다. 가끔은 보수 정당의 맏형답지 않은 말을 해 ‘홍감탱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알지 못한다. 28년 전(1993)엔 그가 ‘윤석열’이었다는 것을. 조직폭력배 수사로 이력을 쌓아온 그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 황태자이던 박철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던 엄삼탁, 경찰청 치안감 천기호 씨를 구속하고 검찰 대선배인 이건개 고검장과 일진일퇴의 싸움을 했다. ‘삼국지’ 여포처럼 단기필마로 다수를 상대해 승리했다. 친정(검찰)까지 노렸으니 미운털이 박혀 안기부 파견 검사로 밀려났다. 당시에는 현역 검사가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지금보다 더 엄히 금했다. 그럼에도 상부에 간단하게 보고만 하고 기자와 호텔에서 하루 밤낮으로 인터뷰하는 뱃심을 보였다.
기자가 그를 ‘표범 같은 검사’로 규정한 인터뷰를 월간지에 게재해 화제를 만들자, 고려대는 그에게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여했다. 도하 일간지에 그를 내세운 학교 홍보 전면광고도 개재했다. 방송작가 송지나 씨는 그를 모티프 삼아 드라마 ‘모래시계’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얼마 뒤 기자와 홍준표 당시 검사는 ‘모래시계’ 비디오를 선물로 가져온 송지나 씨, 극중에서 검사역을 맡았던 배우 박상원 씨를 만나 식사했다. 그날 홍 검사는 현란한 말솜씨로 모두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1993년의 기세 안 보여
그럼에도 그는 마음을 다 주지 않았다. 자기 딴에 중요하다 싶은 것을 알려줄 때는 꼭 목욕탕에 가서 읊어줬다. 이러한 치밀함 덕분인지 ‘아사리판’인 정치계로 이동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저격수’를 하면서도 26년을 살아남아 보수 정당 유력 정치인 지위를 굳혔을 것이다.
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홍 의원은 ‘19대 대선의 홍준표’에게도 크게 뒤져 있다. 그럴수록 유려한 말로 윤 전 총장과 윤희숙 의원을 견제해야 하는데, 그냥 창을 꽂아 넣으니 ‘홍감탱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1993년 그는 육참골단을 마다하지 않았다. 26년간 좌파 저격수로 정치투쟁을 하면서 약점을 잡히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야권의 유력 정치인 반열엔 올랐지만 패기를 잃었을 수 있다. 육참골단하는 윤 전 총장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그에게선 1993년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으로 이동하면서 그는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라는 책을 썼는데, 실수하고 있는 것은 지금 홍 의원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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